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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한국 음식의 만남 젊은 아저씨들의 지하 아지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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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호 29면

일본식 선술집 이자카야(居酒屋)를 종종 가곤 한다. 한 잔 하면서 밥과 술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기에 그만한 데가 없어서다. 지글지글 굽고 볶는 거한 요리 대신 간단하면서도 깔끔한 요리들이 번잡스럽지 않은 것도 장점. 여기에 사케에서 맥주, 소주, 때로는 위스키까지 구비한 그곳의 멀티플 메뉴 체제가 일단 가면 실패는 없다는 안도감을 준다.

이도은 기자의 ‘거기’ <4> 서교동 선술집 몽로

다만 예전만한 감흥은 차츰 사라지게 되었다. 베이컨 숙주 볶음, 닭 날개 튀김, 사시미 샐러드가 신선하기는커녕 3종 세트 자동 주문으로 들어가는 순간이 온 것이다. 게다가 프랜차이즈 빵집처럼 똑같은 간판의 이자카야를 드나드는 회수도 점점 늘어났다.

그러던 차에 서교동 ‘몽로(夢路)’가 눈에 들어왔다. ‘이탈리안 선술집’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꽂혔다. 이탈리아 음식이라 하면 우아한(혹은 느끼한) 피자·파스타부터 떠오르는 와중에 선술집이라니, 뭐가 다를까 싶은 호기심이 생겨났다. 게다가 맛 칼럼니스트로도 이름난 박찬일 셰프가 문 연 곳이라는 후광 효과도 한 몫했다. 일단 가서 정체를 파악할 수 밖에.

친구 셋을 대동하고 찾은 그곳은 번쩍이는 네온사인은커녕 인적조차 드문 주택가 골목에 자리하고 있었다(그래서 간판조차 단박에 눈에 띄지 않는다). 게다가 건물에 들어서서도 좁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은밀한 공간이었다. 일행 중 하나가 ‘이런데 술집이 있네’라며 문을 연 순간, 또다시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귀로는 1980~90년대 가요와 팝송이 흘러 나오고, 눈으로는 투박한 회색 페인트 벽에 나무 테이블이 일렬로 배치된 복고풍 인테리어와 마주했다. 노란 필라멘트 전구 빛 덕에 술집이라기보다 지하 아지트의 분위기도 났다. 그 공간 속에서 함께 풍경이 되는 이들은 왁자지껄 조잘대는 이십대가 아닌, 눈빛으로 교감할 줄 아는 삼십 대 이상이 주를 이뤘다. 나중에 직원이 귀띔하길 손님 대부분이 ‘웬만큼 나이가 있는 분들’이란다.

드디어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훑어 보니 대략 이런 식이다. 어란과 구운 빵, 빵에 발라먹는 절인 대구와 감자 스프레드, 곱창과 소힘줄찜-. 이름만으로는 감이 잘 안잡히는 요리들인데, 이탈리안과 한식 그 중간쯤에 있는 절충형이라 보면 옳다. 가령 ‘얇게 저민 흑돼지 등심과 참치 소스’만 해도 그렇단다. 원래 이탈리아 요리는 송아지 고기를 재료로 쓰는데 국내에서 좋은 송아지 고기를 구하기란 쉽지 않아 대신 양질의 흑돼지 등심으로 대체한다는 설명이다. 주류 역시 이탈리안 음식과 와인의 조합에서 한결 자유롭다. 수입 맥주와 프리미엄 소주, 위스키, 보드카까지 망라한다. 이탈리안 햄과 소주의 조합이 이 몽로에서만큼은 가능하다는 얘기다.

여자 넷이 식탐인지 호기심인지 이름이 끌리는 대로 이것저것을 먹어봤다. 가지 치즈구이, 프로 볼로네 치즈에 명란을 넣은 계란찜, 박찬일식 닭튀김, 명란 파스타 등의 맛은 황홀할 정도는 아니지만 딱히 흠잡을 데도 없다. 기교보다 재료에 충실하다. 산지 식재를 쓰고, 직접 소스와 면을 만든다는 셰프의 고집이 그대로 드러난다. 다만 먹성 좋은 이들이 식사 대용으로 먹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2만 원대 요리의 양이 그야말로 안주 수준이라 가지 치즈구이는 3조각, 닭튀김은 8조각으로 나온다.

▶몽로: 서울 서교동 377-20, 02-3144-8767, 오후 6시~오전 1시(일요일 휴무). 어란과 구운 빵(2만원), 빵에 발라먹는 절인 대구와 감자 스프레드(2만원), 박찬일식 닭튀김(2만3000원)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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