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의 질투와 보상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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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형경
소설가

이따금 만날 때면 연애 상담을 해오는 사춘기 조카가 있다. 한때 여자친구 마음 얻는 법을 묻더니, 얼마 후 “아무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상심을 표현했다. 이번에 또다시 여자친구 마음 얻는 법을 묻기에 나름대로 최선의 답을 골라냈다. “관심을 보이되, 부담을 주지 마라.” 그 속뜻까지 이해할까 싶었는데 조카가 감탄사를 뱉으며 크게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아차린 것을 설명해보라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선물 같은 것을 주고, 말없이 돌아서는 거요.”

 질투는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과 사랑의 경쟁자로 등장한 세 번째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다. 질투의 심리를 연구한 미국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연인들이 상대방의 관심을 유지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질투의 감정을 사용해 왔다고 설명한다. 그는 인간의 숨겨진 욕망, 즉 정해진 짝 이외에 다른 외도 상대를 찾으려는 열정에서도 그 전략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전략은 위험한 측면이 있다. 미국에서 연인이나 남편에게 살해당한 여성의 60% 이상이 이별 통보 직후나 이혼 전 별거 과정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통계를 제시한다. 여자가 헤어지자고 말하면 남자는 그 말을 “다른 남자에게 가겠다”는 의미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남자의 질투 표현에는 또 다른 이상한 측면이 있다. 질투에 휩싸인 여자는 사랑의 경쟁자를 찾아가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반면 질투에 휩싸인 남자는 대체로 사랑하는 당사자에게 폭력을 가한다. 질투 이외의 다른 심리적 요소가 섞여 들기 때문이다. 양가성을 통합하지 못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분노를 쏟는다든가, 성숙한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사랑 대상을 소유물로 여기며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다고 믿는 성향 같은 것. 무엇보다 남자는 자신이 투자한 시간과 열정에 대해 적절한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점에 낙담한다. 짝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인데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느끼는 나의 사춘기 조카처럼.

 가끔, 턱도 없이 헌신적인 사랑을 꿈꾸는 후배 여성에게 말해준다. 남자와 대등하고 존중받는 연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면 공정한 거래를 해야 한다고. 남자는 저녁 한 끼 사주면서도 오늘 밤 이 여자와 잘 수 있을까 생각하고, 가방 정도를 사주면 당연히 그녀를 ‘자빠뜨릴 수 있다’고 믿는다고. 남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랑을 주면서 알뜰히 계산해서 보상받으려는 마음을 비우면 한층 행복해지지 않을까.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