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예산 배정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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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검토하겠다고 밝힌 국립추도시설 건립 문제가 공수표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고이즈미 총리는 22일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추도시설 조사비용을 배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자민당 소장파 의원들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계속 참배를 주장하는 의원모임을 28일 결성키로 했다. 또 추도시설 건립 반대운동을 조직적으로 펼칠 기세다. 고이즈미 총리는 2001년에도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후 한국.중국이 거세게 반발하자 대체 추도시설 건립 검토를 약속했으나 흐지부지된 바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또 "야스쿠니 참배가 한.일, 중.일 관계의 핵심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며 "일본에는 일본의 사고방식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야스쿠니 참배를 한.일 간 역사문제의 핵심으로 지적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 예산 배정 거부=고이즈미 총리가 출석한 가운데 22일 열린 중의원 결산행정감시위원회에선 추도시설과 야스쿠니 문제가 최대의 쟁점이 됐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의 입장은 완강했다. "(추도시설은) 만들어야 할지, 만들지 말아야 할지를 포함해 검토하겠다"는 발언에 그쳤다. 추도시설 여론조사 및 부지검토 등 조사비용을 내년도 예산에 배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똑같은 발언만 반복했다. 일본 언론들은 "예산 배정으로 추도시설 건립이 기정사실화되지 않도록 미리 못을 박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관방장관도 "예산을 요구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예산배정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공명당은 당론으로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반대하고 있다.

◆ 소장파 의원들은 야스쿠니 참배 지지=자민당 소장파 의원 50여 명이 '평화를 기원하고 진정한 국익을 생각해 야스쿠니 참배를 지지하는 젊은 의원의 모임'을 결성키로 했다고 산케이(産經)신문이 23일 보도했다. 중진급 친중(親中)파 의원들이 참배중단을 주장하고, 야스쿠니신사에서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을 분사하거나 별도 추도시설을 건립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데 대해 대항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됐다. 4선의 마쓰시타 다다히로(松下忠洋) 의원이 회장으로 내정됐다. 자민당 강경파를 대표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간사장대리를 고문으로 옹립한다는 계획이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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