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 피아니스트 서혜경의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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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번의 항암치료와 절제 수술, 33번의 방사선 치료로 마침내 완치 판정을 받은 서혜경 피아니스트(사진)가 유방암 환우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워낙 체력이 좋아 유방암 징후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서 피아니스트. 그가 신체검사를 한다고 했을 때 매니저는 그런 시간이 있으면 피아노 연습이나 하라고 했단다. 검사결과 그녀는 유방암 3기 말이었다.

정리=배은나 객원기자

피아니스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서 청중에게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또 다른 아름답고 희망찬 긍정의 소리를 전하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비참한 여자들의 표정을 보신 일이 있습니까? 그 표정이 궁금하시면 종합병원 유방암 센터로 가 보십시오. 거기에서 당신은 매일매일 공포와 불안에 절어서 우왕좌왕하는 수 백 명의 여인네들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8년 전 저도 그런 여자들 중의 한 명으로 암센터 대기석에 움츠리고 앉아있던 환자였습니다. 참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고 받아들이기 싫은 유방암 확진과 투병생활 1년 반. 형언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절망의 나날들이었습니다.

 항암주사 한 번에 머리카락이 남김없이 빠지고 항암주사 두 번에 백혈구의 수치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낮아졌습니다. 세 번째 항암 주사는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이렇게 사느니 옥상에서 뛰어 내리는 게 낫겠다는 충동을 느꼈습니다. 방사선 치료를 33번을 거치면서, 살갗에서 진물이 나고 시커멓게 타 들어가는 몸을 보면서, 인간의 몸이 아니라 한 낱 고기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남아 있을 어린 아이들은 어찌할까 하는 불안함과 우울함, 어둠은 너무 짙었고 한숨과 눈물의 세월이 그렇게 길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계곡이 깊으면 산은 더욱 높고, 어둠이 짙으면 빛은 더욱 밝아지게 마련인가 봅니다. 불안과 고통의 수렁을 넘고 나니 감사하고 즐거운 새로운 삶이 나타났습니다.

 얼마 전 유방암 환우들의 모임인 ‘한유회’ 회원들이 한국유방건강재단의 도움으로 히말라야에 도전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이들의 수기를 엮어 출판한 ‘핑크 히말라야’라는 책에 저는 추천사를 이렇게 썼습니다. “겁 없는 아줌마들의 천방지축 히말라야 도전기! 하기야 히말라야의 여신인들 어찌 이들의 입산을 허락하시지 않겠는가? 이 책은 인생에서 가장 깊고 무서운 암이라는 절망의 크레바스를 건너, 삶을 핑크빛 긍정으로 물들여가는 보통 아줌마들의 감동과 희망의 등반기요, 투병기이다.”

환우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완치 후에는 즐겁고 건강한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의학의 발달과 함께 우리나라의 우수한 의료진들이 암환자의 생존율을 증가시켜 가고 있습니다. 조만간 암이 치명적인 질병이 아닌, 감기처럼 가볍게 치료할 수 있고 완치할 수 있는 지나가는 병이 되는 시절이 곧 오리라 생각합니다. 희망과 긍정의 마음을 가지고 버티세요. 그리고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한국유방건강재단 홍보대사 서혜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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