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장관급 회담] 이번엔 '뭔가 하자'는 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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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당국회담에 오래 관여해온 통일부 당국자는 21일 "이번 회담은 '하자는 회담'이다"라고 말했다. 22일 첫 전체회의를 하는 15차 장관급 회담이 남북 간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거나 기세 싸움으로 판을 깨는 식은 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무엇보다 지난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현안의 큰 가닥을 잡아놓은 게 합의 도출에 힘을 보탤 것이란 기대다.

남측 대표단은 ▶장성급 군사 회담▶경협추진위▶적십자 회담▶8.15 이산가족 상봉 등 네 가지를 우리 측 공동보도문 초안에 담긴 주요 의제로 꼽았다.

장성급 회담은 김 위원장이 17일 면담 때 "서해상에서 총질을 할 필요 있느냐"며 각별히 챙긴 사안이다. 지난해 5월 이후 열리지 않는 장성급 회담을 7월 중 열어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의 남북 해군 간 군사 충돌을 막는데 초점을 맞춘다는 복안이다. 그렇지만 일각에서는 남북 간에 이미 함정을 통한 통신.신호체계 등이 합의돼 있는 만큼 새로운 논의 못지않게 기존 합의를 잘 이행토록 하는 게 중요하지 않으냐는 지적도 있다.

경협추진위원회는 예년 수준(40만t)의 쌀 차관 제공 문제가 다뤄지는 자리여서 북한이 7월 중 가장 우선적으로 재가동하자고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8.15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김 위원장이 이행을 지시한 만큼 구체적 날짜를 박는 게 가능하다. 다만 화상 상봉, 금강산 면회소 건설 등은 적십자 회담으로 넘긴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북핵 문제는 정동영-김정일 면담에서 충분히 다뤄진 만큼 6자회담 관련 국가들이 북한을 설득하는 단계로 무게 중심이 옮겨갔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이번엔 크게 다뤄질 이슈가 아니란 의미다.

이번 회담은 짤막한 공동보도문을 냈던 14차 회담보다 알맹이가 있을 것이란 게 당국자들의 말이다. 남북 관계의 시간표를 어떻게 새로 짜고 김 위원장이 공언한 사안에 북측이 얼마나 이행 의지를 보일지가 관전 포인트란 얘기다.

그러나 북한 대표단의 공항 도착 직후 한 보수단체의 반(反) 김정일 시위로 분위기가 썰렁해진 부분은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북측 대표단은 이에 반발해 호텔에 늦게 도착하고 남측 60여 명이 기다리는 환영만찬에도 한 시간 늦게 나타났다. 남측 수석대표인 정동영 장관은 만찬 때 '우리 민족끼리'란 표현까지 먼저 쓰고, 북측 단장인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를 '회담 신동(神童)'이라고까지 치켜세우며 달랬다. 하지만 최고지도자에 대한 모욕에 북측 감정의 앙금이 쉽게 가라앉을지는 미지수다.

권 단장이 만찬연설에서 강조한 '6.15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과 실천적 조치'가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지도 의문이다. 6.15 평양 통일대축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고 평가하는 북한이 '우리 민족끼리' 정신을 내세워 민족공조를 더욱 압박해올 경우 회담 테이블에서 남북 간 온도차가 드러날 수도 있다. 22일 권 단장의 전체회의 기본발언이 어떨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정 장관이 만찬장을 나서며 기자에게 "어려움은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회담이 녹록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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