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전국 프리즘

'제주특별자치'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제주도를 고도의 자치권을 갖는 자치 파라다이스로."

지난 5월 20일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는 제주특별자치의 밑그림이랄 수 있는 기본구상안을 내놓았다. 이 구상은 노무현 참여정부가 강조해 온 분권과 혁신을 구체화하는 향도로서 내용은 세 개의 축으로 이루어졌다. 즉 지방분권의 선도적 시범지역, 특화발전의 모범지역,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체계 개혁이 그것이다.

이른바 입법, 조직 및 인사, 재정 등 자치행정 전 분야에 걸쳐 파격적인 자치권을 인정하고, 이러한 자치동력을 성장엔진으로 해서 제주도를 특성화된 개방경제도시로 발전시켜 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자치특별기획은 제주로서는 지역의 백년대계를 획기적으로 결정하는 주춧돌을 놓는, 참으로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출발선상에서부터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대한 세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첫째, 분권과 자치는 지역의 자존을 스스로 관리하기 위한 대표적인 내발적.내생적 사항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기본구상은 중앙정부 주도로 외생적으로 주어지고 있고, 그것도 지역에는 내용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시작부터 실패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물론 조세구조 조정 등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정부가 지원해야 할 일이지만 지역비전을 새롭게 세우고 이를 추진해 나갈 분권 구조를 창출하는 것은 지방 스스로가 나서야 하는 지방의 몫일 수밖에 없다.

둘째, 최근 제주 사회를 뜨겁게 양분하고 있는 행정계층구조 개편 논의가 절차와 내용에 있어 거꾸로 돼 있다.

계층과 구역으로 대표되는 행정구조 개편은 특별자치 내용물을 담고 갈 그릇과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구조 개편은 특별자치의 내용이 확정된 연후 그것에 맞는 행정구조를 논의하고 선택하는 것이 순서상 맞다. 따라서 지금의 논쟁은 앞뒤가 잘못돼 역량만 소진하는 측면이 강하다.

내용적 측면에서도 제주도가 주민투표에 부치려는 '혁신안'은 전혀 혁신이지 않은, 오히려 역사의 물결을 뒤로 돌리는 '수구안'에 다름 아니다. 시.군을 그대로 두면서 시장.군수 직선제와 기초의회만 폐지하는 현행 안은 '하나의 도'를 만들어 내지 못함으로써 효율성을 담보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지방자치 원래의 풀뿌리 민주성도 보장하지 못하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일 수 있다.

셋째, 제주특별자치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어 내려는 제주의 비전이 무(無)규제, 영어 공용화, 신산업 창출 등 개방경제적 요소만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농업 등 지연산업.환경보전.문화정체성.사회복지 등 정작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지역의 생존적 측면이 도외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일의 비전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의 생존을 해결하고 그것이 생존에 연계될 때만이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다. 평생을 촌에 살면서 감귤 농사만 지어온 어르신들에게 영어를 배워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사업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송재호 제주대 교수 (관광개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