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가 있는 아침 ] - '별들의 고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김완화(1958~ ), '별들의 고향'

어머니는 집 가까운 콩밭에 김을 매시고 저녁이 되어서야 호미와 고무신을 들고 돌아오셨지요. 우물가 빨랫돌 위에 고무신을 닦아 놓으시고 하루의 피로를 씻으시던 저녁, 땅거미가 내릴수록 더욱 희게 빛을 발하던 어머니의 고무신. 어머니의 땀 밴 하루가 곱게 저물면 이제 막, 우물 안에는 솔방울만한 별들이 쏟아지고 갓 피어난 봉숭아도 살포시 꽃잎을 사리는 것이었지요.


유년의 고향 마을에 우물이 있었다. 옆에는 수령을 알 수 없는 팽나무가 있었다. 엄마들과 당숙모들, 고모들과 누이들은 쌀을 씻고 나물을 다듬고 빨래하고 여름이면 밤도와 목욕을 했다. 팽나무 가지에 미리 올라앉아 그걸 몰래 훔쳐보다 들켜 볼기짝을 맞기도 했다. 팽나무 그늘은 두껍고 실해서 부은 발등들이 오래 머물다 갔다. 이제 나무는 쓰러지셨고, 우물은 메워지셨다. 죽음 앞둔 노인 같은 마을이 안쓰럽다.

이재무<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