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참배 명분 쌓기 나서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19일 태평양전쟁의 격전지였던 이오지마(硫黃島)를 방문했다. 이날 정부 주최로 열린 '이오지마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총리가 도쿄에서 남쪽으로 1250km 떨어진 이오지마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이오지마는 1945년 일본군과 미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그해 2월 미군이 상륙하자 일본군은 방공호 등을 거점으로 1개월간 저항했으나 결국 2만1900명이 전멸했다. 미군도 6821명이 전사했다. 68년 미국으로부터 일본에 반환돼 현재는 자위대 기지로 사용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줄곧 '평화'를 강조했다. 그는 "오늘의 평화와 번영은 여기서 목숨을 잃은 고귀한 희생의 기반 위에 구축된 것"이라며 "다시는 전쟁을 해선 안 된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강조했다. 또 "앞으로도 일본은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 적극 공헌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 정치권에서는 고이즈미 총리의 이오지마 방문을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의 명분을 쌓으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달 3년 만에 도쿄의 전몰자 묘역 참배행사에 참가했다. 그리고 이날 이오지마 방문에 이어 한.일 정상회담에서 돌아온 다음날인 23일에는 함락 60주년을 맞아 오키나와(沖繩)에서 열리는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한다.

일련의 '전몰자 참배 순례'를 통해 "나의 전몰자 추도는 야스쿠니에 국한된 것이 결코 아니다"란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총리 주변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일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국회 회기 종료(8월 13일) 후에 가면 야당의 공세에서 벗어날 수 있고 어차피 갈 거면 종전기념일에 가는 게 좋다'는 이유로 8월 15일 참배설이 가장 유력하게 돌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 축제기간(7월 13~16일)을 빌미삼아 참배할 것이란 설도 있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合祀)돼 있다는 점에서 다른 곳과 다르다. 이 때문에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할 경우 한국.중국은 물론 일본 국내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