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관광특구 맞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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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특구로 지정된 지 3년이 넘었지만 나아진 게 없어요. 제대로 된 공중화장실조차 없는데 특구라고 말하는 것이 쑥스럽습니다."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7년째 옷장사를 하고 있는 천원성(49)씨는 "특구 지정 후 오히려 매출이 줄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육성하겠다며 정부가 1993년 도입한 '관광특구제'가 겉돌고 있다. 상인들은 오히려 규제만 강화됐다고 말한다.

관광특구는 연 10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방문하는 지역 가운데 쇼핑.숙박 등의 여건이 잘 갖춰져 있는 곳을 대상으로 문화관광부가 지정한다.

서울에는 이태원.남대문.동대문 시장 등 세곳이 지정됐고 전국적으로 22곳이 있다. 특구가 되면 자치단체가 환경개선 사업비를 일부 지원하고 광고물 규제를 다소 완화하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상인들은 주장했다.

◆"관광특구 지정 효과 없어요"=지난 28일 오후 11시 서울 동대문 패션타운. 지난해 5월 관광특구로 지정된 이곳엔 늦은 밤인데도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다.

하지만 외국인들에게 관광명소를 알리는 조형물이나 외국어 안내 표지판 등은 보이지 않았다. 이 지역 관광안내센터는 오후 6시쯤 문을 닫아 야간쇼핑을 즐기러 나온 외국인에겐 무용지물과 다름없다.

동대문 관광특구 이대종 협회장은 "관광특구로 지정된 뒤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찾아와서는 하루 종일 막히는 교통과 골목길의 무질서에 혀를 내두른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가장 먼저 관광특구로 지정된 이태원 쇼핑거리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태원 입구에 경계아치를 세우고 관광안내센터를 운영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지원책이 없기 때문이다. 대형버스 한대를 세우지 못할 정도로 주차난이 심각하고 상습 교통정체 구간이지만 뾰족한 개선대책은 없다.

시민단체들은 거리를 가득 메운 각종 광고물 때문에 매년 이곳을 '워스트(최악) 거리'로 지정하고 있다.

문광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관광특구라는 이름에 걸맞는 혜택이나 지원책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관광육성 대책 서둘러야=서울시는 지난해 2월 80억원을 들여 동대문 패션타운 일대의 교통혼잡을 해결하는 한편 이 일대에 꽃길을 만들어 홍콩에 버금가는 세계적 쇼핑천국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청계천 복원이 최우선 사업이 되면서 이 사업은 백지화됐다. 중복 투자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중구청 관계자는 "교통난 해결과 가로정비 지원을 시와 문광부에 매년 요청하지만 '예산이 없다'는 말만 듣는다"고 답답해 했다.

관광특구는 야간 영업이 규제됐던 98년까지만 해도 영업시간을 새벽 2시까지 보장해줘 어느 정도 이익을 봤다.

그러나 심야영업 단속이 풀리면서 이러한 이익마저 사라졌다. 이태원에서 10년째 가방을 판매하고 있는 김형자(53.여)씨는 "관광특구라서 가격표시제와 같은 규제만 강화됐다"고 주장했다.

한국관광연구원 김현(金炫.33)박사는 "일본의 경우 국제관광테마지구에는 조세감면이나 랜드마크(지역의 상징적 건물) 개발 등 관광산업 육성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우리도 특구에 어울리지 않는 건물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관광기반시설을 개선.보완하는 등 중장기 발전 계획의 수립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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