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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배우 사관학교' 극단 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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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 목화 출신 배우들은 “오태석 선생님의 작품은 생략이 많고 상징성이 강하다. 배우에게는 집중력이 더 요구되고 그런 만큼 연기도 자연스럽게 는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 아랫줄 왼쪽부터 정진각·조상건·오태석·박영규, 윗줄 왼쪽부터 임원희·황정민·이명호·성지루씨. 박종근 기자

가상의 통일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 '간큰가족'에서 메가톤급 웃음을 선물한 '주연 뺨치는 조연 배우' 김수로와 성지루.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파고든 '남극일기'에서 탐험대 부대장역을 냉철하게 소화한 박희순. '신라의 달밤''공공의 적' 등에서 건달을 주로 연기하다 TV 드라마 '토지'의 악역 연기로 안방극장까지 접수한 '돌출 치아' 유해진. 인터넷영화 '다찌마와 리'로 스타덤에 올라 '실미도''주먹이 운다' 등 출연작이 열 편을 훌쩍 넘은 임원희….

이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서울예전(현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이다. 하지만 대학로에 가서 물어보면 "모두 목화레퍼터리컴퍼니 출신"이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자전거''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천년의 수인' 등 한국 연극사에 길이 남을 수작을 만들어 낸 연출가 오태석씨가 이끄는 극단 목화 말이다.

목화 출신 배우들이 지금 충무로를 떠받치고 있다. 과하다고? 영화와 연극을 넘나들며 활동 중인 조상건.정진각.김학철.정원중.김응수.손병호.이명호.황정민을 떠올린다면…. 또 '시트콤의 제왕'으로 통하는 '순풍산부인과'의 박영규는 어떤가.

초여름 볕이 따가웠던 14일. 목화의 전.현직 배우들이 오씨가 운영하는 대학로 아룽구지 소극장으로 모여들었다. 마침 아룽구지는 15일 공연을 시작한 '심청이는…' 준비로 북적댔다. '현역 목화파'인 이명호와 황정민이 각각 무대에서 망치질을 하고, 재봉틀로 의상을 만들다가 선배들을 맞았다. '충무로 사관학교'로 불릴 만한 극단 목화의 파워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목화성 배우, 혹독한 수련= '엄마''알포인트'의 손병호는 "연극계에 '목화성 배우'란 말이 있다. '쭉쭉빵빵'과 거리가 먼, 못생긴 외모지만 연극에 대한 열정과 끼를 압축한 표현"이라고 소개했다. 박영규.박희순 정도를 빼면 그런 얘기가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조련사' 오씨는 "박영규가 무슨 잘생긴 얼굴이냐"며 그마저도 제외했다. 오디션 없이 자천.타천으로 '수월하게' 입단하지만, 일단 식구로 받아들여진 목화의 새내기들은 호되게 단련된다. 1990년 입단한 박희순은 "군대를 면제받은 차에 고생 한번 해 보자며 자원했다"고 돌아봤다. 그만큼 극단 목화는 악명이 높다. 보수가 변변찮은 것은 물론 무대며 의상까지 '공연의 모든 것'을 배우들이 직접 준비하는 철저한 자급자족 방식이다. 당연히 선.후배 간 위계도 엄격하다. 한눈 파는 일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유해진은 "99년 '주유소 습격사건'을 오 선생님 몰래 찍었었다"고 고백했다.

◆황홀한 깨우침의 순간= 연습이 대가를 만든다. 모든 에너지를 연극에 쏟고, 또 그런 날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연기'가 눈에 보인다. 성지루는 "90년 '심청이는…' 초연 때 대사 한 마디에 어울리는 얼굴 표정을 찾아내기 위해 한 달 반을 극장에서 먹고 자며 고심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일단 스승 오씨에게 '이 놈 봐라' 하는 인상을 심어 주면 그 다음부터는 어떤 연기든 자신감이 생기고, 힘든 줄을 모르게 된다는 것. 그전까지는 공연 기간 중에도 계속되는 오씨의 가공할 '메모 전달'을 견뎌 내야 한다. 스승은 연기자 한 명 한 명에 대한 불만을 깨알 같이 옮겨 적고, 또 그가 만족할 때까지 배우들을 다그친다. 실제로 목화 배우들의 캐릭터 분석 능력은 영화판에서 정평이 나 있다. 박영규는 "공연이 끝난 뒤의 술자리도 무대다. 끝까지 살아남아 맨정신으로는 듣지 못했던 오 선생님의 특강을 받곤 했다"고 자랑했다.

◆목화는 코믹 연기자 양성소?= 코미디에 강한 배우가 유난히 많은 것에 대해 오씨는 "내 연극의 바탕에 해학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부친상을 당해 가슴이 미어지는데도 상대방이 인사치레를 해 오면 "잘 돌아가신 거지요"라고 웃음 짓는 한국적 정서에 목화 배우들이 그 누구보다 익숙하다는 것. 그는 "웃고 있지만 슬픈, 남들이 갖지 못한 색깔의 웃음이 충무로에 먹혀들어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스승이 편애하는 제자가 있을까. 오씨의 답. "안 아픈 손가락 없다. 목화 들어와서 10년 지나면 나간다. 영화.방송에 시집을 가는 거다. 시댁(감독.PD)에서 며느리(배우)의 장점을 몰라볼까 염려된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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