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 웃다 80年] 32. 이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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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쇼단에서 사회자로 일할 때 무용수들과 함께 찍은 사진.

아내와 나 사이에 싸움이 잦아졌다. 돈을 벌지 못하는 내 처지와 아내의 늦은 귀가가 늘 문제였다. 하루는 크게 다투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집을 나왔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돈을 벌자. 돈을 벌면 떳떳하겠지."

하루 종일 서울 거리를 헤맸다. 서대문의 동양극장과 중구 초동의 수도극장 주변을 배회했다. 그러다 겨우 안면이 있는 악사를 만났다. "서울에서 미군 부대 말고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요." 그러나 미군 부대 공연은 가수와 악사, 무용수만 필요로 했다. 배우가 설 자리는 없었다. 우리는 청계천 4가에서 꿀꿀이죽으로 요기를 하고 헤어졌다.

결국 나는 대구행 열차를 탔다. 그동안 아내 몰래 반찬 값을 아껴서 모은 비상금으로 차표를 샀다. 대구에는 피란 온 악극단 사람들이 많았다. 일자리를 구하긴 어렵지 않았다. 나는 '미도미(美都美) 악극단'의 주역 배우로 발탁됐다. 떠돌이 악극단이라 재정이 넉넉하진 않았다. 극작가를 따로 둘 처지가 아니어서 나는 대본까지 썼다.

내가 처음 쓴 악극의 제목은 '초혼(初魂)'이었다. 다리 밑에 사는 넝마주이 청년과 부잣집 외동딸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작품이었다. 나는 직접 주인공 역을 맡았다. 공연은 크게 성공했다. '지방 한량들의 주머니를 미도미 악극단이 몽땅 긁어간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

비슷한 시기에 썼던 악극 '물레방아 도는데'도 큰 인기를 끌었다. 서울 유학생과 시골 기생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었다. 마지막이 슬펐다. 기생을 짝사랑하던 깡패가 있다. 어느 날 그가 기생을 겁탈하려 한다. 위기의 순간에 나타난 유학생은 낫으로 깡패를 죽인다. 그리고 수갑을 차고 끌려간다는 내용이었다.

어느새 나는 인기 배우가 돼 있었다. 주위에 여자들도 들끓었다. 기생들을 비롯해 갓 생겨나기 시작한 다방의 레지들, 댕기머리를 한 시골의 순박한 처녀들까지 다양했다. 밤늦게 숙소로 돌아가면 여성팬들이 대여섯 명씩 기다리고 있었다. 돈을 못 벌어 아내에게 구박만 받던 시절과는 딴판이었다.

그렇게 여섯 달이 흘렀다. 나는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집에 두고 온 가족이 너무도 보고 싶었다. 주머니도 불룩했다. 마침 극단은 연습 기간이었다. 나는 단장에게 사정해 사흘간 휴가를 얻었다.

오전 11시에 대구역을 떠난 기차는 오후 11시에야 서울역에 도착했다. 허겁지겁 청파동으로 갔다.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낯선 여자가 있었다. 집주인이었다. "피란갔다 오니까 누가 살고 있기에 나가라고 그랬죠.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어요."

이튿날 나는 삼각지로 가 지숙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이사가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내는 빨래를 널고 있었다. "처자식을 팽개치고 나간 사람이 무슨 일로 다시 왔어요? 우리는 이미 헤어진 것 아닌가요." 아내의 반응은 대단히 냉담했다. 그해 우리는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배삼룡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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