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발표 의문점] 욕설 들었다고 총기 난사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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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군 당국은 19일 오전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GP의 총기사고는 언어폭력을 이기지 못한 '우발적 범행'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오후 2차 발표는 김모 일병이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음을 시사하는 정황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그 밖에도 군 발표에는 의문점이 많다.

◆ 언어폭력으로 8명 살해? =군 당국이 발표한 범행 동기는 '언어폭력'이다. 1차 발표에선 "내무반에 들어와 선임병 얼굴을 보고 평소의 언어폭력이 떠올라 김 일병은 우발적으로 수류탄을 던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단순한 언어폭력만으로 충격적인 범행을 저질렀다는 설명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또 군 당국의 추가 조사 결과를 보면 김 일병의 범행 과정은 매우 치밀하다. 김 일병은 ▶후임자를 깨우러 간다며 선임병을 안심시킨 채 GP 내 내무반으로 향했고▶내무반에서 K-1 소총을 가져와 화장실에서 탄창을 장전했다. 이후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진 후에는 상황실 장교를 쏘러 GP 내 복도를 이동했다.

이처럼 치밀한 범행을 준비하게 된 배경에는 언어폭력 외에 또 다른 가혹행위가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더구나 군 당국은 "현재까지 김 일병은 성격 결함이나 정신병적 문제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상 상태였던 김 일병을 극단적인 범행으로 몰고간 이유는 여전히 의문이다.

◆ 총탄 들고 내무반 진입, 왜 못 막았나=전방 GP의 내무반에는 K-1 소총이 비치돼 있다. 이 때문에 탄창만 확보하면 총기 사고 가능성이 상존한다. 하지만 김 일병은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고 내무반에 들어갔다.

다음 근무자를 깨우겠다는 말에 선임병이 보내줬다는 군 당국의 설명도 납득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후임 교대근무자를 깨우는 임무는 GP 내 상황병이 맡는다. 초소를 비워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임병이 김 일병의 근무지 이탈을 왜 제지하지 않았는지, 평소 이 초소는 경계수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었는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 왜 김일병이 자백할 때까지 범인 몰랐나=김 일병이 범인이라는 사실은 본인이 자백할 때까지 몰랐다는 게 육군의 설명이다. 근무자들이 모두 관측장교 방에 구금된 뒤 한 사병이 범행에 사용된 총기가 자신의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러자 김 일병은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 일병은 범행 직후 복도를 돌아다니며 내무반과 체력단련실.상황실에 사격을 가했지만 어느 누구도 김 일병이 범인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당시 GP 내에 근무자들이 이런 상황을 확인치 못한 이유도 애매하다. 군 당국 발표에 따르면 "적이 침입했을지도 모른다"는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김 일병은 오히려 무장 상태로 다시 경계근무지로 복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아수라장이던 GP 내 상황을 감안해도 의문은 여전하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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