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안하고 또 어딜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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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니, 금방 가르쳐 줬는데 또 모르니?』
책상 앞에서 벌어지는 해도해도 끝없는 아이들과의 싸움, 별로 반응도 없는 아이들 앞에서 혼자 떠들다 제풀에 지쳐 물러 앉는다.
하기야 아이들인들 얼마나 지겨우랴. 책상 위에 깊이 숙여진 아이들의 머리가 너무 무거워 보인다.
『당신은 아이들 공부나 잘 시켜요.』
남편은 아주 쉽게, 가끔 나에게 이런 당부를 한다. 입시 철이 되어 경쟁이나 하듯, 고액의 장학금에 훌륭한 대우를 약속하는 많은 대학들의 우수한 학생모집 공고를 보며, 또 그런 대학에를 들어가지 못해 머리를 앓는 많은 주위 사람들의 딱한 모습들을 보며, 이제 중학교의 문턱에 선 내 아이들이 자꾸 불안해지는 것이리라.
그러나 공부라는 것이 어디 「공부나」정도로 쉬운 것도 아닐뿐더러 다른 일은 다 젖혀 두어도 된다는 듯 「공부나」로 선심 쓰듯 하는 남편의 말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다.
하기는 집안 일, 아이들 일,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못해 온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워,『글세. 공부도 좋지만 요즈음 같아서는 그저 애들 건강하고 바르게만 커 주어도 그냥 좋을 것 같아요.』
남편 앞에서는 변명 삼아 이런 말을 하기도 했지만, 책상 앞에 앉아 끙끙 애를 쓰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순전히 변명만도 아닌, 그런 마음이다.
사실 요즈음같이 자고 나면 보고 듣게 되는 청소년들의 심각한 문제들은 개구지고 거칠기만 한 사내아이들을 키우는 나를 언제나 살얼음 딛듯 조심스럽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공부 잘하고, 건강하고, 또 올바른 정신이 깃든, 그런 훌륭한 사람으로 커주기만 한다면야 오죽이나 좋을까마는….
누군가 『영원한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만족한 상태에서 얻는 행복이란 잠시뿐, 곧 습관화되어 행복을 느낄 수 없게된다고 했다.
요즈음 흔히 하는 이야기대로 좋은 대학에의 진학이 대부분 좋은 환경 속에서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면, 그리고 그러한 풍족한 생활도 결국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이라면, 그런 공부에 온 정신을 쏟아 매달리기보다는 아이들 마음껏 뛰놀게 하여 건강한 몸을, 조그마한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겸손한 마음을 길러 주는 것이 아이들로 하여금 진정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닐까?
책상 앞에 앉아 열심히 책을 뒤적이던 아이들은 이런 생각에 잠긴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며 야구공과 글러브를 찾아들고는 현관을 나선다.
그러나 현관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나의 입에서 터져 나온 호통.
『아니, 공부 안하고 또 어딜 가니!』

<이광자>

<서울 관악구 신림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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