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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국정 실험이 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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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국정 운영방식으로 말하자면 노무현 정부는 참여정부보다는 '위원회 정부'가 제격이다. 물론 위원회는 예전 정부 때도 있었고 참여정부 들어 숫자로는 5개밖에 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역할과 영향력은 전과는 딴판이다.

청와대 이정우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스스로 '참여정부는 25개 부처와 12개 대통령자문위원회가 종횡으로 얽힌 매트릭스 정부'임을 자처한다. 위원회 학자와 부처 관료들이 나라 장래를 놓고 불철주야 토론하고 협력하는 참여형.개방형 정부로서 국정 운영체제의 새로운 전형(典型)이며 '위원회가 나라의 희망'이라고까지 했다. 이미 많은 선진국에서 위원회를 통해 좋은 결과가 나타나고 있으며, 참여정부가 훗날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을 내는 게 있다면 후세 사가는 그 공로를 부처와 위원회의 협력에서 찾을 것이라고 예단했다. 과연 그럴까.

위원회 중심의 국정 운영은 '애드호크러시(adhocracy)'로 불린다. '애드 혹(ad hoc)'은 '이 목적을 위해'라는 뜻의 라틴어다. 특정 국가 과제를 기존의 관료집단에 맡기지 않고 통치권자가 '특별 위원회(adhoc committee)'에 의존하는 국정 운영방식이다. 미국 백악관의 국내정책보좌관을 지낸 하버드 행정대학원의 로저 포터 교수가 빌 클린턴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을 빗대어 만들어 낸 말이다.

관료집단이 개혁에 소극적이고 부처 간 영역주의가 발목을 잡는 상황에서 위원회 중심의 국정 운영은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그러나 특별한 목적의 위원회는 숫자가 적을수록, 과제가 분명할수록, 활동기간이 짧을수록 효율적이다. 상설기관처럼 제도화되면 대통령의 권위를 업고 부처에 군림하게 마련이다.

위원회는 정책 토론과 입안에 주력할 뿐 그 집행은 어디까지나 부처의 몫이라지만 행담도 개발사건이 대변하듯 대통령 자문위원회가 자문의 영역을 넘어 부처를 명령하고 부처의 계획을 능가하고 부처의 집행영역을 넘나들고 있는 정황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상황 논리를 좇다 보면 정책이 왔다갔다하고 관료집단의 사기 저하는 물론 학자와 관료, 시민단체 대표들과의 토론 과정에서는 아마추어들의 이상주의가 득세하게 마련이다. 잇따른 정책 혼선, 정책과 현실 간의 괴리, 정책의 일관성 부재 등에서 오는 우리 경제의 '정책 불황'은 이 위원회 중심의 국정 운영과도 무관치 않다.

더구나 우리의 국정 관리 수준은 지난 2년 새 도리어 뒷걸음질쳤다. 지난달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정치적 안정성은 69위에서 84위로 15단계 하락했고, 정부 관료와 행정 서비스의 효율성은 38위에서 42위로 떨어졌다. 정부 규제가 시장원리에 부합하는지를 나타내는 규제의 질(質)은 49위에서 58위로, 부패 통제는 65위에서 78위로 순위가 크게 밀렸다. 서울대 김광웅(행정대학원) 교수는 이는 참여정부 초기부터 정부 혁신을 표방하며 애써 오던 것이 무색해진 방증으로 분석한다. 12개 위원회가 100개 국정과제를 끌어안고 로드맵 더미에 묻혀 있는 모습은 보기에 안쓰럽다. 클린턴은 '애드호크러시'와 토론을 너무 즐기다 스스로 정치생명을 단축했다. 정책은 의도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애드 혹'은 그 숫자가 많으면 더 이상 '애드 혹'이 아닌 옥상옥일 뿐이다. 군더더기 혹의 제거가 곧 정부 혁신이다. 한 명의 프로가 아쉬운 판에 '아마추어가 희망'이라는 '부동심'으로 국정 실험을 밀어붙인다면 현 정부는 영원한 아마추어 정부라는 지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변상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