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가 있는 아침 ] - '그 노인이 지은 집' 부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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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 노인이 지은 집' 부분

그는 황량했던 마음을 다져 그 속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먼저 집 크기에 맞춰 단단한 바탕의 주춧돌 심고

세월에 알맞은 나이테의 소나무 기둥을 세웠다

기둥과 기둥 사이엔 휘파람으로 울던 가지들 엮어 채우고

붉게 마르면서 갈라진 틈새마다 스스스, 풀벌레 소리

곱게 대패질한 참나무로 마루를 깔고도 그 소리 그치지 않아

잠시 앉아서 쉴 때 바람은 나무의 결을 따라 불어 가고

길상호(1973~ ),


집이란 무엇인가. 물리적 거처일 뿐인가. 본래 집이란 아늑한 휴식의 공간이자, 생의 흔적과 시간의 숨결이 밴 아우라의 처소인 것을. 그러나 지금 우리가 거처하고 있는 집은 어떠한가. 환금성의 가치로 전락하고 말았지 않은가. 자연 사물과 인간이 동체로 더불어 사는 동안 두껍게 추억이 쌓이는, 살아 숨 쉬는 집이 그립다.

이재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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