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마돈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마돈나(Madonna)는 이탈리아 이름이다. '나의 여인(My Lady)'이란 뜻인데, 가톨릭들에겐 '성모 마리아'로 통한다. 미국의 이탈리아계 이민들이 20세기 초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이 이름을 세계에 떨친 공신은 팝가수 마돈나, '마리아 루이스 베로니카 치치오네'란 긴 이름의 여인이다.

마돈나의 삶은 결핍(缺乏)으로 시작됐다. 마돈나는 이탈리아 이민 자동차 수리공의 8남매 중 맏이로 1958년 디트로이트의 교외에서 태어났다. 가난했다. 다섯살 때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얼마 뒤 아버지와 재혼한 계모를 끝까지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자랐다. 발레리노 남자 친구를 사귀면서 본격적으로 춤에 눈을 떴다. 춤을 잘 춰 미시간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그래도 모자랐다. 스무살 되던 해 무작정 뉴욕으로 달려갔다. 택시 기사에게 "세상의 한가운데 내려달라"고 부탁해 내린 곳이 타임스 스퀘어. 수중엔 단돈 35달러와 끼고 자던 인형뿐이었다.

심리적으로 결핍의 공허감은 과잉(過剩)을 초래한다. 마돈나는 "세상에 군림하고 싶다"는 욕망에서 "가슴 한 구석에 큰 구멍을 간직한 채" 춤을 추었다.

누드 모델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밤만 되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5년 만에 뉴욕의 유명 음반사 사장의 눈에 띄어 데뷔 앨범 '마돈나'를 내놓았다. 다음해 '라이크 어 버진(Like a Virgin)'으로 세상의 한가운데 우뚝 섰다.

'처녀처럼'이란 제목의 이 앨범은 그녀의 이름 '마돈나', 즉 성(聖)처녀의 이미지를 전복시킨 도발이었다. 성녀(聖女) 를 뜻하는 이름의 마돈나는 뮤직비디오에서 하얀 면사포를 쓰고 나와선 농염한 뒤틀림으로 남자를 농락한다.

"성녀와 창녀의 상반된 이미지를 안고 살아왔다"는 마돈나의 고백은 정확하게 대박의 기폭제가 됐다. '에로티카(Erotica)'란 앨범은 잘 다듬어진 육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누드 사진집 '섹스(Sex)'와 함께 내놓아 상승효과를 극대화했다.

20년을 이어온 마돈나의 성공은 성(性)을 주제로 한 전복과 도발의 끊임없는 변주였다. 그런 마돈나가 최근 내놓은 앨범 '아메리칸 라이프(American Life)'에서 평화와 반전을 노래했다. 미국식 독선과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본래 이름으로 돌아가려는 획기적 변신인 듯하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