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7월 6자회담' 공수표여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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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평양에서 열린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면담은 긴장으로 치닫던 북핵 문제와 남북 관계 해결에 작은 실마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 한다. 특히 김 위원장이 6자회담 복귀에 대해 이전보다 진전된 입장을 보인 것이나, 남북 장성급 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다시 추진키로 한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김 위원장은 "6자회담을 한 번도 포기하거나 거부한 적이 없다"면서 "미국이 북한을 인정.존중하려는 뜻이 확고하다면 7월 중에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핵 문제 해결시 핵확산금지조약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포함한 모든 국제사찰을 받겠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의 이런 발언은 지난 2월 왕자루이 중국 대외연락부장과의 면담에서 나온 입장과 원칙적인 측면에선 큰 차이가 없다. 당시에도 그는 "6자회담을 반대한 적이 없다. 6자회담의 조건이 성숙된다면 그 어느 때든지 회담장에 나갈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7월 복귀'를 시사하면서도 '미국과의 협의'라는 전제를 붙인 것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북한이 실제로 7월 중 6자회담에 복귀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과거에 '미국의 적대정책'이라는 이유를 대며 태도가 돌변한 적이 있었던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번 발언에는 북핵 문제의 '해결'쪽에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 엿보인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가 김 주석의 유훈이라 밝히고, 복귀 시기를 처음으로 명시했다는 사실도 긍정적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한.미는 김 위원장의 이번 발언을 면밀히 분석,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킬 수 있는 다각적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정 장관은 최근 한.미 정상회담 내용을 김 위원장에게 가감 없이 설명했다. 이는 제2차 핵위기가 불거지기 시작한 2002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북핵에 대한 양국 정부의 정확한 입장이 북한의 최고지도자에게 전달된 것이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경우 받을 수 있는 혜택의 구체적 내용이 제시됐다고 한다. 테러지정국 해제, 전략적 물자의 대북 수출 허용, 전면적인 경제 교류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이 이런 내용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보다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길 기대한다. 핵만 포기하면 북한이 원하는 체제 보장과 대규모 경제 지원을 해주겠다는데 주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현 정부 출범 뒤 소강상태였던 남북 관계는 1년 전부터 악화일로였다. 지난해 7월 정부가 내린 김일성 사망 10주기 방북단 불허 조치 이후 북한은 대화 채널을 닫았다. 대통령과 통일부 장관이 각각 나서 "핵은 자위수단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탈북자 문제를 갖고 북한 체제를 흔드는 것은 우리 정책이 아니다"는 등 유화적인 발언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런 북한이 김 위원장과 정 장관의 면담을 수용, 두 사람이 남북 현안에 대해 장시간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눈 것은 그 자체로 남북 간 긴장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향후 개최될 각종 회담이 보다 실질적으로 이뤄지길 기대한다.

김 위원장은 민족공조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민족의 생존이 걸려 있는 핵 문제에 대해 남측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미국과만 협상하겠다는 자세는 온당한 민족공조가 아니다. 김 위원장은 남북 주민들의 안녕과 복지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정말 진솔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6자회담에 일단 복귀해 꼬일 대로 꼬인 북핵의 실타래를 푸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이것만이 남북의 상생을 담보하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