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들 미국행 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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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인기있는 직종 중 하나인 한의사의 미국행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한의사 공급이 계속 늘면서 시장이 점차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는 데다 의료시장 개방에 따른 중국 한의사(中醫)들의 국내시장 진출이 예상되는 등 의료여건도 불확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최근 웰빙 열풍으로 한의사들의 주요 수입원인 보약.침 대신 먹거리와 운동으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들의 미국행을 부추기고 있다.

17일 국제한의학교류센터에 따르면 10월 15일 치러질 예정인 미국 한의사 시험(NCCAOM)에 응시할 국내 한의사 수는 95명으로 집계됐다.

한의학교류센터 김세영 원장은 "시험 접수시한인 이달 말까지 20여 명이 더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 들어 이미 시험을 치른 한의사를 포함하면 올해만 100명 이상이 NCCAOM에 도전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2~3년 전만 해도 미국 한의사 시험의 한 해 응시인원이 15명 내외(지난해는 25명)에 불과했다"며 "국내 한의사의 미국 한의사 시험 응시가 급격히 늘어나자 NCCAOM 측은 앞으로 시험을 한국에서 치르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대한한의사협회에 따르면 미국 한의사 시험에 응시한 국내 한의사의 합격률은 60~70%. 지금까지 미국 한의사 면허를 취득한 한국 한의사 수는 7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번에 응시원서를 낸 개업 한의사 S씨(34)는 "미국에서 자녀를 교육하고, 미국에서 개업하는 것이 더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선 침 한 번 시술에 3500원을 받는 데 비해 미국에선 30~120달러(3만~12만원)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한의사 P씨는 "매년 11개 한의대에서 860명의 한의사를 배출하고 있고 지난달 5월말 현재 전체 한의사 수가 1만5000명에 이르는 등 한의사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인 데다 최근 웰빙 열풍의 '후유증'으로 한의사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한의사 A씨는 "우리 국민이 과거엔 병이 난 뒤에 한약.침 등으로 치료했으나 최근엔 병이 나기 전에 음식.운동으로 미리 건강을 챙기기 때문에 한의원의 수입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강남경희한방병원 이경섭 원장은 "현재는 한국(6년제)과 미국(4, 5년제)의 학제가 달라 미국 한의대를 나온 사람은 한국 한의사 시험에 응시할 수 없게 돼 있다"며 "한의사들의 미국행이 늘어나면서 미국한의사협회에서 한국 시장 개방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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