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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삼풍 10주기, 얼마나 달라졌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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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발생한 지 10년이 가까워 온다. 삼풍 사고는 무려 502명의 생명이 희생되고, 937명이 부상한 전대미문의 사고였다.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와 함께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구조적 병폐와 어두운 구석이 백일하에 드러난 사건이기도 했다. 사고 당시 그 참혹함에 온 국민은 분노했다. 건설산업을 바로잡기 위한 각계의 토론이 줄을 이었고, 유사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한 각종 제도 도입과 함께 관련 법령들 또한 정비되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과연 삼풍의 악몽은 치유되었고, 우리는 제2의 삼풍 사고로부터 안전한가? 불행히도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가 없다. 우선 사고 이후 우리 사회의 병폐가 과연 얼마나 해소되었으며, 건설 품질과 관계자들의 의식수준은 어느 정도 향상되었을까. 삼풍 사고는 설계.시공.유지관리 등 건설의 전 과정에 걸친 총체적 부실과 인허가 과정에서의 부패사슬 구조가 초래한 재앙이었다. 단순한 건물 붕괴사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병리현상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설계.시공.유지관리에 관여한 기술자들의 프로페셔널리즘 상실과 건축주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금전만능주의는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전문가로서의 기술자 정신은 오히려 퇴보하고, 부정부패의 수법은 더 교묘해지고 있다.

우리의 안전문화와 안전의식 수준도 그다지 개선됐다고 하기 어렵다. 건설안전의 확보에는 시공단계보다 설계와 유지관리 단계의 부실 방지가 더 중요하다. 특히 설계가 부실하면 아무리 시공이 잘되더라도 건축물이 온전할 수가 없다. 과거 10년 동안 우리 건축설계 수준은 외형적으로는 발전했을지언정 질적으로는 그다지 개선되지 못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낮은 용역단가와 진입장벽에 젊고 유능한 건축가들이 좌절하고, 중소 규모 설계사무소들은 일감 부족으로 생존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건축물의 안전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조설계 업계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많은 사람이 현실의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전업하거나 설계업무를 포기하는 사태마저 벌어지고 있다. 업계의 상황이 이토록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방관자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건설의 소프트웨어인 설계나 엔지니어링 산업의 육성 없이는 우리나라 건설산업의 미래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사고 이후 품질과 안전 확보를 위해 도입된 수많은 법과 제도는 실효를 거두기보다는 오히려 업계의 발전을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아무도 지키려 하지 않고, 실제로 지켜지지도 않는 300개가 넘는 건설 관련 규제는 건설업 전체를 옥죄는 형틀이 되었다. 급조되는 바람에 일관성이 결여되고, 중복 덧칠된 규제는 비리와 부정의 온상이 되었고, 관련 주체들의 창의성을 억제해 결국은 건설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은 물론 국제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삼풍의 아픔을 극복하고 우리 건설산업이 새롭게 태어나려면 건설 관련법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과감하게 정비하는 일이 시급하다.

건축은 그 사회의 거울이라는 경구가 있다. 이는 곧 건설산업의 진정한 발전은 단순히 건설 관계자의 의식개혁이나 양심에 호소하는 것으로는 어렵고, 건설산업 전반에 걸친 구조개혁과 사회 전반적인 의식수준의 향상이 전제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단순한 안전사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병폐였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건설산업이 진일보한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만이 삼풍의 쓰라린 상처를 치유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김종훈 한미파슨스(주)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