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주점의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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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공식석상에서 마시는 술은 천천히 한가하게 마셔야한다. 마음을 놓고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은 점잖게 호탕하게 마셔야한다. 병자는 적게 마셔야하고 마음에 슬픔이 있는 사람은 모름지기 정신 없이 취하도록 마셔야한다. 봄철에는 집 뜰에서 마시고, 여름철에는 교외에서, 가을철에는 배 위에서, 겨울철에는 집안에서 마실 것이며 밤술은 달을 벗삼아 마셔야한다.
임어당은『생활의 발견』에서 술 마시는 법을 이렇게 얘기했지만 오늘날 도시의 서민들은 술을 간이주점에서 마실 수밖에 없다.
간이주점-. 객실면적이 33평방m(10평) 미만의 음식점 영업으로 접객부를 두고 주로 주류를 취급하는 영업으로 규정돼 있었다.
이른바「니나노집」까지를 포함해 선술집·목로주점 등 서민들이 애용하는 술집의 대부분이 모두 이「간이주점」의 범주에 들어간다.
지난해 정부가 식료위생법 시행령개정에서 이 간이주점을 도시락판매업·이동음식점 영업 등과 함께 대중음식점 영업에 통합해 버린 것은 작은 실수(?)였다. 간이주점과 대중음식점 업의 차이는 다른 영업이「식사」가 위주인데 대해 간이주점은「술」이 주이며 무엇보다 간이주점에는 술을 따라주는 접객부를 둘 수 있다는 점이었다.
대중음식점에 통합되면서 간이주점엔 접객부를 둘 수 없게됐다. 전국 l만2천7백여 개소 간이주점들이 졸지에 모두 업태위반 상태에 떨어지게 됐다.
그뿐 아니라 대중음식점 영업이 신고제로 바뀐데 따라 술집영업이 불가능한 학교부근 정화구역에까지 대중음식점으로 신고, 술집영업을 하는 예기찮은 부작용도 나타나게 됐다.
정부는 이 같은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없었던 간이주점영업을 부활하기로 결정했다. 불과 6개월도 안 돼 법을 또 고친다는 체면손상을 무릅쓰고 법을 고치기로 했다. 간이주점영업을 대중음식점 업에서 분리, 허가업종으로 두기로 한 것은 바로 그만큼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랄 수 있다.
서민들을 위한 위안의 장소, 하루하루 생활에 지친 서민들이 적은 돈으로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는 위락의 공간으로 부담이 적은 서민의 술집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작은 정책의 결정에 얼마나 신중한 배려가 필요한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통금해제로 자유로와진 밤 시간이 간이주점부활과 함께 술로 낭비되는 일은 물론 없겠지만 생활을 즐기는 건전한 지혜의 개발도 아쉽다 하겠다.

<문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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