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라운지] 요즘 마취 어떻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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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8세기 중반 마취약이 등장하기 전까지 수술시 통증을 줄이는 데 기발한 마취 방법들이 동원됐다.

마약이나 음주는 물론이고 '퍽치기'까지 동원됐다. 미몽 마취라고 부르는 퍽치기는 둔기로 죽지 않을 만큼 머리를 때려 의식을 잃게 한 뒤 깨어나기 전에 수술을 하는 것이다.

마취과 원로의사들은 요즘 수술장 분위기를 보고 격세지감을 느낀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마취는 원시적(?)이었다. 환자 코 위에 방독마스크 같은 망을 씌워 놓고 에테르를 부으면 환자가 호흡을 하면서 냄새를 맡는 식이었다. 이른바 수동식 기화방식 마취였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려 외과의사가 회진 돌고 식사하고 한 두 시간 만에 수술장에 들어가도 마취가 안 돼 있는 경우도 있었다.

환자의 상태도 육안으로 체크했다. 환자의 배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호흡이 정상인지를, 입술 색깔을 보고 혈액 내 산소포화도를 점검했다. 입술이 파랗게 변하면 산소 부족을 뜻한다. 맥박을 알기 위해 한의사처럼 맥을 잡거나 하루 종일 청진기를 귀에 꽂고 있어 습진이 생길 지경이었다.

이에 비해 요즘 마취 방식이나 관련 장비들은 최첨단 자동화 방식이다. 마취는 기계에 의해 자동으로 진행된다. 특히 환자의 호흡을 통해 폐로 들어간 마취제는 99.9% 이상이 다시 기도로 배출된다. 극미량의 약물만이 몸에 흡수돼 대사된다는 뜻이다. 약물이 간이나 신장을 거치지 않으니 그만큼 약물 독성이 줄었다.

마취 장비들은 환자의 미묘한 변화를 실시간 디지털 영상으로 보여 준다. 내쉬는 숨에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 심장은 제대로 뛰는지, 혈액 내 산소가 부족하지 않은지를 보여 주고,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경고음을 울려 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모든 병원이 이런 첨단 장비를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1억원 이상의 고가 장비를 설치한 곳도 많지만 400만~500만원짜리로 만족하는 병원도 있다. 이런 장비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은 의료보험 수가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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