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공사로 5300억원 '가짜 순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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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6일 발부된 구속영장에 따르면 1997~98년 당시 '세계경영'을 추진하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외환위기로 재무구조가 악화하자 돈을 빌리기 위해 '악마의 유혹'으로 불리는 분식회계를 선택했다. 있지도 않은 매출을 허위로 만들거나 자산을 실제보다 부풀리고, 빚을 숨기는 수법을 동원해 국내 금융기관으로부터 불법 대출한 금액이 10조원에 이른다. 대우를 우량 기업이라 믿고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나 주식투자자를 속인 사기였다.

◆ 있지도 않은 공사에서 5000억원대 수익=A4 용지로 100여 쪽에 달하는 구속영장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분식 수법은 매출 부풀리기.

김 전 회장은 97년 강병호 당시 ㈜대우 사장 등에게 지시해 인도 등 10개 국가에서 공사를 벌여 모두 5300여억원의 순이익을 올린 것으로 조작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벌어지지도 않은, 장부상에만 존재했던 '유령공사'였다.

김 전 회장은 또 97년 12월 김영구 당시 ㈜대우 부사장 등에게 홍콩에'유령회사'인 E사를 만든 뒤 수출계약서 등 관련 서류를 가짜로 꾸미게 했다. 이를 통해 국내 은행에서 수출어음을 할인받아 엉터리로 매출이 생긴 것처럼 장부를 꾸몄다.

◆ 2억 달러 차입이 자본 유치로 둔갑=대우자동차는 96년 6월 스위스 금융회사(UBS) 등으로부터 2억 달러를 빌리는 과정에서 해외에 '아르텍'이라는 유령회사를 통해 돈을 들여 왔다.

아르텍은 대우차의 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위장했으나 실제로는 UBS로부터 빚을 얻은 것이었다. 회계상으로는 2억 달러의 외자 유치를 통해 자본금이 늘어나는 것처럼 만들었다.

계열사의 부채비율과 이익배당률을 직접 정한 뒤 회계장부를 조작하도록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대우는 97년 12월 아프리카 리비아에서 건설공사에 참여했으나 공사대금 1800여억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회사 재정 상태의 부실화를 우려해 손해부분을 장부에 기록하지 않았다. 원칙적으로는 대손충당금으로 계산해 자산에서 빼야 한다.

김 전 회장은 97년 대우자동차의 손익전망 회의에서 김태구 당시 사장 등에게 "부채비율을 500% 이하로 낮추고, 당기순이익은 3000억원 이상으로 분식회계하라"고 지침을 내리는 등 계열사의 분식회계 규모를 직접 챙겼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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