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줄기세포와 생명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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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구상에서 최소한 1세기 이내에 복제된 인간을 만날 기회는 없을 것이다." 이 말에 안도하는 사람도 있고 적이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떠한 여론조사에서도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인간 복제 반대자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이야기이지만 기존의 '불임 치료' 방법으로는 아기를 가질 수 없어 생명 복제에만 한 가닥 기대를 걸던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메시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점은 1996년 복제양 돌리의 탄생 이래 복제소(영롱이).복제돼지.복제고양이.복제토끼.복제노새 등이 잇따라 태어났는데, 복제인간만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얼마 전까지 다른 동물보다 인간 복제가 오히려 쉽다고 장담하던 연구자가, "영장류에서는 체세포 복제배아를 만들 수 없다"는 새튼 교수 등의 주장을 뒤엎고 인간 배아복제에 성공한 바로 그 연구자가 "만들 수 없다"고 하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98년 세계 최초로 위스콘신대 영장류 연구센터의 톰슨 박사팀이 인공수정을 하고 남은 잔여배아에서, 존스홉킨스대 산부인과의 기어하트 교수팀이 유산된 태아의 세포(성체세포)에서 각각 줄기세포를 추출해 배양하는 데 성공한 이래 줄기세포는 난치병 치료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체세포핵치환 방법으로 복제한 인간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어떤 연구의 궁극적인 성과를 평가하는 데는 대체로 상당히 긴 기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의학과 생명과학기술의 연구 결과가 실제로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는 것은 특히 그러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의학적.과학적 발견과 '기적의 물질'들이 한동안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키다 어느 순간 맥없이 수그러들었던 역사적 사실들을 차분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줄기세포 연구는 질병 치료에서 커다란 기대의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확실한 전망을 언급할 단계는 아니다. 이제 막 출발선을 떠났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임상 적용의 문턱을 넘기 시작한 성체 줄기세포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특히 복제배아 줄기세포는 이제 추출에 성공했을 따름이다. 원하는 세포로 분화시키고 암세포로 전환할 가능성을 차단해야 하는 등 앞으로 갈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그럼에도 당장 온갖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을 듯 합리적인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환상을 심어 주는 분위기는 우려해야 한다. 연구자 스스로 인정했듯이 거의 마지막 과정에서 이뤄졌어야 할 복제 배아줄기세포 추출이 지나치게 이르게 이뤄진 점에 환호하기보다는 그 파장을 깊이 성찰할 때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줄기세포는 잔여배아.복제배아.성체세포에서 얻을 수 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은 그 세 가지 방법 중에서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영국과 함께 세 가지를 다 허용하는 유이(唯二)한 나라다. 얼마 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반대했는데도 미 의회에서 통과된 법은 복제배아가 아니라 잔여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연방정부의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의 법이다. 영국은 의회에서 복제배아 연구를 허용하는 법이 통과된 지 3년 만에야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하고 고심한 끝에 최초로 연구 승인이 이뤄졌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는 인간배아복제 연구의 종류, 대상 및 범위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도 법률 시행 6개월이 돼 가는 지금까지 그러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은 채 인간배아복제와 배아줄기세포 추출에 전폭적인 지원만을 되뇌는 우리 정부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지금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정도를 걸어야 할 때다.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생명윤리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