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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 아직은 시기상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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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부는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인천특구에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하고, '의료서비스육성협의회'를 만들어 자본 참여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논리는 의료서비스가 고부가가치 산업인 점을 감안,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비영리로 묶여 있는 의료사업에 자본 참여와 이익 배당을 보장하고, 환자 유치 금지조항도 개정해 의료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리병원은 아직 시기상조다. 첫째, 헌법적 이유다. 국민의 생명을 유지해 주는 것은 국가의 헌법상 의무다. 국가는 군인에게 총을 주고 외적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키도록 한 것과 같이, 의사에게 메스를 주고 질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키도록 하고 있다. 무면허 의료행위를 철저히 규제하는 이유는 의사의 독점권을 보장해 주기 위한 특혜가 아니라 국가에 대 국민 생명 유지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경제학적인 이유다. 영리병원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과잉진료나 불필요한 진료를 권하게 될 개연성이 높다. 의료수가는 2000년 의약분업에 반대한 의사들의 집단폐업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의사에게 의료 공급이 독점되고, 다른 대체수단이 없어 환자가 일방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영리병원 도입 효과도 예상과는 달리 의료의 질이나 연구개발 투자율을 높이지 못한다. 미국의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보다 진료비가 1.19배 비싼 반면 사망률은 더 높다. 이유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갓 면허를 딴 의사를 고용하고, 호스피스 치료도 줄이는 데 있다. 응급환자는 가난한 경우가 많아 영리병원들이 응급실을 만들지 않고, 응급의료센터가 있는 비영리병원 근처에 개원해 그곳으로 보내고, 돈이 되는 환자만을 받는다.

2004년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에서 발표한 베스트병원에 영리병원은 한 군데도 없다. 미국 내 최대 영리병원인 컬럼비아/HCA의 산하병원 196개 중 의학연구, 교육기능을 수행하는 병원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셋째, 문화적 이유다. 우리는 단일민족이고, 인내천사상을 가지고 있어 평등의식이 강하다. 여기에 부에 대해 존경심보다는 적개심이 더 크다. 이런 상황에서 부자들만이 다닐 수 있는 영리병원을 만든다는 것은 사회계층 간의 갈등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고, 상대적 박탈감으로부터 발생하는 범죄를 막을 방법이 없다.

넷째, 건강보험 현실이다. 영리병원은 공공의료기관의 비율이 OECD 국가처럼 80% 이상 되고, 공보험이 정착된 나라에서 환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공공의료기관이 10%가 채 되지 않고, 외래진료비 중 환자 본인부담률이 약 65%에 이르는 등 아직 의료접근권이 매우 떨어져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의 독점성이 크고, 무면허 의료행위는 그 자체로 형사처벌을 한다. 공급이 독점되면서 영리를 추구하는 것은 '전매사업'밖에 없다.

전매사업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의료공급을 독점하면서 영리를 얻도록 하는 것은 명분도 없다. 생명을 가지고 이익을 얻도록 해서는 안 된다. 영리병원허용에 대한 논의는 국민이 병원에 갈 때 치료비를 내지 않아도 되도록 건강보험이 확대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신현호 건강보험 정책심의위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