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이야기 마을] 끝나지 않은 가슴앓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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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요? 억센 밧줄이 심장을 옥죄어 오는 느낌. 어린 날의 아련한 첫사랑, 산산이 부서져 버린 그 추억의 파편은 아직도 가슴 한구석에 그리움으로 남아 절 슬프게 한답니다.

어린 시절 저에겐, 동성보다 더 편했던 남자친구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친구였던 그 아이. 뭔가에 이끌리듯 그에게 첫눈에 반해버린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일기란 것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우연히 제 가방 속에 든 일기를 보게 된 친구가 그에게 "내 친구가 널 좋아한다더라" 고 말해버렸고 그날 저녁 친구에 이끌려 고백을 해버린 제게 그는 그러더라고요.

"우린 아직 어리잖아. 그냥, 친구로 지냈으면 해."

순진하게 그 말을 믿은 제가 울며불며 이야기하자, 친구가 웃더니 한마디 하더군요. "걔, 별명이 카사노바야."

그날 이후 전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그 아이 주변의 여자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두 살 아래의 후배부터 연상의 여인까지, 친구 말대로 같은 여자와 한 달을 넘기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와의 연락을 끊었습니다.

4년 후, 친구와 뮤지컬을 보고 돌아오던 길에 그를 다시 보고야 말았습니다. 다행히 제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를 보며 제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습니다. 완전히 지워졌다 생각했던 그 사람에게 또다시 흔들려버린 제가 너무 미워서요. 어렵게 그의 전화번호를 알아냈고 며칠 동안을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습니다. 자존심 때문이었을까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른 이름을 찾았습니다. "잘못 걸었다"고 말하는 그와 조금이라도 더 길게 통화하고 싶어 "왜 날 모른 척하느냐"고 화를 냈습니다. 결국 우린 서로 욕을 하며 다투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게 아닌데….' 그가 지칠 때쯤, 전 잘못 건 척한 사실을 그에게 털어놨습니다. 그렇게 우린 4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이번엔 뭔가 잘 될수 있을 거란 생각이 너무 성급했던 걸까요. 우연히 찾은 초등학교 동창의 홈페이지에서 그 사람과 동창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새롭게 시작한 사랑, 축복해 달라고 써 있더군요.

또 한 번 전 말없이 연락을 끊었고, 그렇게 제 일편단심은 산산이 조각나버렸습니다. 잊을 때도 됐건만, 아직도 그 사람을 떠올리면 심장이 멎을 듯이 아파옵니다. 오늘따라 왠지 그 사람이 더 보고 싶습니다.

이소영(19.학생.전북 전주시 효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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