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왜 한국인은 북의 인권유린 분노 않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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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굶주림으로 고통을 겪을 북한 임신부들과 어린이들이 너무 불쌍하다"며 "북한 인권문제에 더 관심을 갖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강제수용소 생활을 겪은 한 탈북자와의 면담에서다.

부시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사흘 후에 '미국 대통령과 탈북자의 만남'이라는 매우 상징적인 이벤트를 통해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했다. 매우 주목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상회담 당시 부시 대통령은 북한 인권문제의 심각성을 거론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다른 방식'을 얘기했고, 부시 대통령은 이를 경청했다는 게 외교부 설명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탈북자와 만나 "한국민은 김정일의 인권유린에 왜 분노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두 정상 간 인식차이가 있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는 발언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북한 인권문제를 외면해 왔다. 유엔 인권결의안에는 불참하거나 기권했다. 심지어 김동식 목사 등 납북된 자국민에 대해서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해 왔다. 김대중 정부에 이어 이 정부에서도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조차 안 하고 있다. 그 이유가 '인도적 지원이나 남북교류를 통해 북한 인권문제가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에서였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과 교류를 하는데도 북한의 인권상황은 변하지 않는 게 문제다. 이 고통받는 동족에 대해서는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인권문제는 양보할 수 없는 최저선이다. 문명국가면 최소한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이 점에 대해 북한당국에 당당하게 얘기해야 한다. 그래야 국제사회에서 손가락질받지 않는다.

부시 정부는 북한 인권법 제정 등 북한 인권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 왔다. 지난 5월엔 미국 인권담당 국무차관이 북한 등을 적시하며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고 그들의 투쟁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부시의 발언을 예의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