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김우중씨의 로비, 은닉재산 밝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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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5년8개월간의 해외 도피생활을 접고 어제 새벽 귀국해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김씨에 대해 분식회계.사기대출 등 혐의로 조만간 구속영장을 청구한 뒤 본격 수사에 나설 계획이어서 그동안 제기된 의혹들이 어느 정도 밝혀질지 주목된다.

지금까지 드러난 김씨의 혐의는 41조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하고, 거짓 장부로 10조원대의 대출을 받았으며, 회사 돈 200억 달러를 해외로 빼돌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을 둘러싼 의혹의 핵심은 은행 대출이나 출국 등 과정에 정치권과 연계됐는지 여부다. 특히 그는 도피 중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대중 대통령이 잠시 나가 있으라고 했다"고 말함으로써 이런 의혹을 증폭시켰다.

대우그룹 해체를 막기 위해 정.관계를 상대로 적극적인 로비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위기 상황에서 그냥 앉아있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검찰 수사를 통해 대우가 영국의 비밀 금융조직인 비에프시(BFC)를 통해 관리해온 자금이 2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사용처 대부분을 확인하지 못해 이 중 일부가 비자금으로 조성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 전 회장의 은닉 재산과 배후 지원세력 유무도 규명해야 한다. 그는 1999년 7월 대우그룹 자구책을 내놓으며 전 재산을 금융권에 담보로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빈털터리가 된 셈이다. 그러나 그는 독일.수단.프랑스.베트남 등을 오가며 장기간 도피생활을 해왔다. 숨겨놓은 재산이나 지원자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그는 2001년 3월 체포영장이 발부돼 인터폴 적색수배 명단에 올랐다. 그럼에도 여러 나라를 자유롭게 오갔으니 그를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것이란 말이 나돌았다.

벌써부터 김씨에 대한 선처를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엄정한 법적 책임을 물은 뒤 검토할 문제다. 김씨도 대우사태의 최종 책임을 지기 위해 귀국한 것이라면 국민 앞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