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라라! 공부] "떠먹여주는 공부, 아이들 망쳐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전소진(16.은광여고 1년), 소영(14.진선여중 2년) 자매는 각각 반에서 하나뿐인 '별종'이다. 사교육 1번지라는 대치동에서 학원 한번 다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과외도 물론이다.

그래서만은 아니다. 이들이 별종인 것은 아버지 전휴성(43.서울 대치동)씨가 17년 경력의 베테랑 학원강사(영어)란 점에서 더 그렇다. 두 자매가 학원 문턱에도 못 가본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 아버지의 확고한 교육 철학 때문이다.

성적이 최상위권은 아니지만 소진양은 지난 중간고사 때 반에서 8등을 했고, 소영양도 중상위권을 유지한다. 이들의 공부법을 들여다 봤다.


◆느림보 교육법= 학원강사 아버지가 직접 아이들을 끼고 '특별과외'를 하는 것이겠거니….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고 하면 으레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두 자매는 "아버지가 하나도 안 가르쳐줘서 불만"이라고 말한다. 전씨는 딸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고 대신 공부하는 방법을 이야기해준다. 또 수시로 진도를 얼마나 나갔는지를 체크한다. 때로는 아이들 방에서 책을 읽으며 '감시'하기도 한다. 모르는 것을 질문할 때만 간단하게 대답해줄 뿐이다. 그 답변도 영어는 본문을, 수학은 풀이과정을 몽땅 외우라는 것이 대부분이다.

"자꾸 옆에서 가르쳐주면 거기에 중독돼요. 스스로 책 보면서 깨우치는 훈련을 해야 '공부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죠." 학원보다 속도가 훨씬 느린데도 전씨가 '혼자 공부하기'를 고집하는 이유다. 점수관리에만 급급한 일부 학원들에 대한 불신도 있다. 전씨는 "찍어주고 기출문제 뽑아주는 식으로 얕게 공부시키면 점수는 당장 올릴지 몰라도 결국 애를 망친다"고 말한다.

◆논술 훈련은 식탁에서=전씨가 가장 강조한 것은 독서다. 그러나 책을 많이 사주지는 않았다. 한 권을 다 읽으면 또 한 권을 사주는 식이었다. 전집은 아예 들여놓지 않았다. "약간 부족하게 책을 줘서 '책 읽는 배고픔'을 알게 해야 한다"는 게 전씨의 지론이다.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책에 대한 흥미를 키운 덕에 두 딸은 학교에서 '다독상'을 여러번 받았다.

논술에 필요한 논리력은 밥상머리 대화에서 키웠다. 두 딸이 초등학생일 때, 하루 동안 겪었던 일을 식사시간에 이야기하게 하고 말 속에서 논리적인 허점을 끄집어 냈다. "아빠, 캔 좀 까주세요." "까주세요?" "아, 따주세요." 말이 논리에 맞지 않으면 즉시 지적하고 바꿔주면서 대화하다 보면 저녁식사 시간이 2시간을 훌쩍 넘곤 했다. 별다른 글쓰기 교육을 시키지 않았는데도 소진양이 각종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휩쓰는 것도 이런 훈련이 쌓인 덕분이라고 전씨는 여긴다.

영어는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부터 시켰다. 전씨는 "한국어 능력을 제대로 갖춘 4학년 정도가 영어를 시작하기 적당하다"고 말한다. 당시 소진양은 알파벳만 겨우 알던 단계. 전씨는 중학교 1학년 영어교과서 테이프를 하루에 4시간씩 매일 듣게 했다. 자습서 한 권만 줬을 뿐 따로 설명해주진 않았다. 다만 부인 정미원(43)씨가 그 4시간 동안 옆에서 지켜보게 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겨우 한 달 만에 1학년 과정을 모두 마쳤다.

소진양은 "듣기 싫어서 딴짓하면서 책도 안 봤는데,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들리더니 받아쓸 수 있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런 식으로 중2, 3학년 과정도 4학년 겨울방학까지 모두 떼었다. 문법과 단어는 중학교 가서 따로 공부해야 했지만, 지금도 처음 보는 영어글을 갖다줘도 낯설지 않다. 그만큼 영어에 익숙해진 것이다.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는 원칙은 수학도 예외가 아니다. 전씨는 "공부는 떠먹여주면 안 된다"며 "헤매고 낑낑대는 과정을 거쳐야 수학적 능력도 향상된다"고 말했다.

수학에 재능이 있던 소영양은 혼자 공부하면서도 제 학년보다 1~2학년씩 앞서 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경시대회 반 대표로 뽑혀 4~5학년 수준의 응용문제를 풀기도 했다. 소영양은 "늘 혼자 공부하다 보니 어려운 응용문제도 고민하다 보면 풀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수학 성적이 형편없었던 소진양은 지난 여름방학 때 수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중1 참고서부터 다시 봤다. 수준에 맞게 차근차근 공부해 지금은 고1 과정을 따라잡았다. 정미원씨는 "아이가 수학 한 문제 가지고 하루종일 씨름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