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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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기대학의 입학시험에서의 급락이 판명되었다. 대충 헤아려서 33만명이 지원한 가운데 16만명이 합격의 영광을 차지했으니까 17만명 정도는 낙방의 쓴잔을 맛보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당연한 일이지만, 뽑은 사람보다는 떨어진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는 먼저 대학에 들어가야 하겠다는 일념에서 밤잠 한번 마음놓고 편안히 자지 못하면서 밤낮으로 애 쓴 보람도 없이 불합격의 경험을 가지게 된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뜻을 표하고 싶다. 그러나 동시에 결코 낙심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새 출발의 설계를 마련할 것을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
낙방의 경험을 가진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지만, 낙방에 좌절하지 않고 그것을 거울삼아 더욱 분발한다면 오히려 이러한 경험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보다 더 커질 수 있고 더 훌륭한 인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기 위하여는 백전불굴·칠전팔기의 용기가 필요하다. 여러분들과 같이 불운이나 역경에 처했을 때에 도리어 용기 백배해서 그 불운과 역경을 극복하는 사람은 인생의 승자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의 패배자로 몰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생을 살면서 실패의 경험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의 주변을 돌아보라. 입지전 중의 인물은 물론이고 사회적 명사라고 하는 분들 가운데도 낙방의 경험을 가진 사람은 적지 않게 있는 것으로 나는 알고있다. 그러나 그네들은 낙방으로 인해서 자포자기하지 않고 용왕매진의 기개를 가졌었기 때문에 그들은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합격자를 발표하는 방에 이름이 빠졌음을 보았을 때 받은 충격과 실의는 인간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적인 것, 그 순간이 지나자 여러분들은 낙방의 원인을 냉정하게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희망찬 새 설계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내일의 영광을 나의 것으로 하기 위하여 주저할 것 없이 힘찬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뎌야 한다.
혹시 남보다 노력이 부족하여 실력에서 뒤떨어 졌다고 자인한다면 당장부터 지난날의 모자랐던 노력을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을 배전의 노력을 쏟기에 단단한 결심을 하여야 한다. 어떠한 시험이고 그것에는 운수라는 것이 다소간에 따르게 마련이지만 그러나 천명을 기다리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나서의 일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혹시 대학과 학과를 택하는 데 눈치를 잘못 보아서 불이익을 입었다면 앞으로는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인생을 찾기에 힘써야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생을 누리는데 중요한 요소는 소신 있는 생활태도를 견지하는 일이다. 누가 무어라 하든 신념을 가지고 자기의 갈 길을 떳떳하게 그리고 꿋꿋하게 가는 사람만이 후회 없는 인생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적성과 포부에 맞추어 자아발견을 추구하려 한다면 남의 눈치를 살펴 우왕좌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혹시 배짱을 부리다 고배를 마셨다면 소신 있는 결단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나 분수를 모르는 어리석음의 결과임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힘을 알고 분수를 지킬 때에만 실패를 면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껏 최선을 다하여 응분의 댓가를 받으려고 하되 그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을 때에 어느 누구도 넘보거나 뒤흔들수 없는 확고한 위치가 구축되는 것이며 실수 없는 삶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반성 속에 여러분들의 앞날의 설계는 다양하게 꾸며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남아있는 후기대학이나 전문대학에의 입학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요 또는 권토중래, 내년 봄의 입시를 향하여 재수의 길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웅지를 품고 진학 이외의 다른 방면에서 생의 보람을 찾으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마치 높은 산에 올라서서 사람 사는 세상을 내려다보듯이 시야를 넓혀서 인생 전체를 관조한다면, 사람이 사는 최선의 방법이란 반드시 대학을 나와야만 얻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옛날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살고있는 오늘의 사회에도 대학의 문을 거치지 않은 많은 분들이 각 방면에서 지도자로 존경의 대상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어떻든 이제 여러분들은 「시시포스의 신화」의 주인공처럼 여러분들이 서 있는 이 순간이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새로운 돌진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영겁(영겁)에 비하면 사람의 일생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실패의 판결을 받은 그 순간에 비하면 우리의 생애는 참으로 영겁에 비할 만큼 긴 것이다. 속세에 사는 우리로서는 인생을 긴 안목을 가지고 앞날을 멀리 내다보면서 새로운 설계를 원대하게 짜야 한다. 무엇이 진리이며 진실인가를 찾아서 말이다. 무엇이 보람된 길이요 행복의 길인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 길은 하나만이 아니다. 마음가짐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많이 찾을 수 있다. 이 길을 각자 나름대로 찾아 새로운 설계를 마련한 다음에는 소같이 성실하게 한 눈 팔지 말고 노력하기만 하면 그 설계는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찾아, 인생을 산다. 그 행복은 대학입시에서의 불운으로 좌우되는 그런 보잘 것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 후기대학이나 전문대학의 입시에 응하든, 재수의 과정을 밟든 또는 대학 진학 이외의 길을 택하든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어느 길을 택하든 「참」을 찾아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행복은 찾아드는 법이다. 그리고 천수를 마치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날 『나도 무엇인가 보람있는 일을 하고 간다』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만이 진정으로 행복을 누린 사람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이다.
부디 이 결론을 찾기 위하여 씩씩하게 새 전진을 시작하기 바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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