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결산] "평양, 회담 면밀 분석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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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미 정상회담 이튿날인 12일자 아침 노동신문은 미국을 비난하는 논평을 실었다. 신문 5면에 미군 당국의 F-117 스텔스 전폭기의 한반도 배치 소식을 전하면서 "6.15 통일대축전을 해치려는 범죄적 책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 자체에 대해서는 12일 오후까지 북한 언론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나눈 이야기를 놓고 평양은 면밀한 분석작업 중일 것이라고 당국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핵개발을 포기할 경우 ▶다자(多者) 안전보장▶에너지 등 실질적 지원▶북.미 간 보다 정상적인 관계(more normal relation) 등 북한이 관심을 가질 굵직한 논의들이 담긴 때문이다. 특히 평양으로서는 "북한을 침공하지 않을 것임을 수차 재확인했다"고 한 부시 대통령의 언급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도 진의파악 등에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북.미 관계 정상화 언급은 1994년10월 제네바 기본합의 때 나온 수교 문제까지 떠올리게 한다.

그런 점에서 북에는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처럼 한.미 정상회담이 북한에 6자회담 복귀 명분이나 단초를 마련해 준 만큼 공은 북한에 넘어갔다고 하겠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며칠 더 시간을 두고 한.미 정상회담의 함의를 파악할 것이라고 말했다.

14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6.15 남북 공동행사 남측 대표단의 평양 방문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이들 행사를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체제안전보장, 북.미 간의 관계개선 등 메시지를 직접 전달할 방침이라고 한다. 북한이 부시 미국 대통령의 평화적.외교적 해결의지를 정확히 알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국도 이같은 메시지 전달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핵 상황 악화 때의 대응책이나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 한.미 간에 어떤 교감이 이뤄졌는지도 북측의 관심거리일 수 있다. 정부도 북한 측에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핵 포기와 6자회담 복귀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북한은 2월 10일 핵무기 보유선언 때 "회담 참가 명분이 마련되고 회담 결과를 기대할 충분한 조건이 조성될 때까지 6자회담 참가를 무기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6자회담 중단 1년째인 오는 26일은 관련국들이 북한의 태도를 판단하는 한계선이 될 수 있다.

이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떤 명분과 시기를 택해 평양 쪽 코트에 있는 공을 되받아칠지 결정해야 할 시기가 임박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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