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타임] 나 다시 돌아갈래! U턴하는 자에게 박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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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중국 오나라 때 주매신이란 사람은 평소 집안을 돌보지 않고 풍류만 즐기는 무능한 가장이었다. 참고 견디며 살던 아내는 결국 집을 나가버린다. 무위도식 하던 주매신도 심한 충격을 받고 그간의 생활을 반성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러자 나이 오십에 큰 벼슬을 했다고 한다.

문득 현재의 나를 돌아봤을 때 처음 자신이 설정해 놓은 길에서 벗어나 있거나, 바른 길이 아닌 샛길에서 방황하는 걸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순간, 정신을 차리고 새 인생을 찾게 되는 것을 가리켜 '유턴(U-turn)의 미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의 저자 김승수씨가 불량스런 청소년기를 보내다 어느 날 삶의 새로운 목표를 향해 끝없이 정진해 서울대 수석을 거머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단순히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긋나버린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용기 있게 삶의 방향을 틀었다는 점이 커다란 감동을 준 것이다.

얼마 전 미국에 딸을 유학 보낸 한 선배는 딸에게 "자의건 타의건 어떤 일이 생겨도 그것이 인생의 끝은 아니란다"라는 말을 해주고 왔다고 한다. 한국과 성 풍속이 너무도 다른 미국에서 살면서 혹시 당할지 모를 불상사 때문에 좌절하지 않도록 북돋워 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누구든 살아가면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크고 작은 시련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사소한 일로 인생이 180도 틀어지거나 심하면 끝없는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니었는데도 당시엔 너무나 큰 사건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중간고사 한번 잘못 봤다고 인생이 끝장 나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실연 한번 당했다고 청춘이 망가지는 것도 아니다.

뒤집어 생각해보자. 사소한 사건이 인생행로를 망가뜨린다면 거꾸로 사소한 변화 하나만으로도 인생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영호는 조금씩 엉켜가는 인생의 고리 때문에 나중에는 자살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택하고 만다. 그 역시 마음만 먹었다면 제자리로 '유턴'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느냐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박재홍(주부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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