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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권 조정, 국민이 더 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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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얼마 전 유엔 인권위원회가 '한국의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를 본 한 외국인 칼럼니스트는 기고를 통해 "한국의 형사사법제도는 독단적이고 부패로 가득하며 법치주의의 외관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점의 근원은 바로 '건강하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한국 검사들의 권력'이라는 점을 이 보고서는 지적함으로써 핵심을 찌르고 있다.

'검사가 재판 전과 재판 과정의 모든 단계에 걸쳐 거의 전권을 행사함으로써 편향.부패.절차의 오남용 가능성을 명백하게 증가시킨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 국민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 한 한국에서는 정의와 법치주의가 여전히 국민을 외면하는 현실이 계속될 것"이라고 끝맺고 있다.

이 같은 시각이 엄존하는데도 최근 경찰과 검찰의 수사권 조정 논의가 밥그릇 싸움이라거나 해묵은 논쟁거리쯤으로 치부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 같은 태도는 일반인이 모르게 신의 입장에서 법을 행사하던 '비밀주의 사법'이 이뤄졌던 중세의 암흑시대로 시계바늘을 되돌리는 어리석은 판단일지도 모른다.

경찰의 주장은 형사소송법 제 195조에 검사만이 수사를 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고 경찰은 수사의 주체에서 배제되어 있는 '검사 독점적 수사구조'를 고치자는 것이다. 경찰은 이것이 정의로운 수사구조를 만들어가는 출발점이며, 국민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법적 대우를 받는 시금석이라고 판단한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경찰에 수사권이 없는 국가는 없다.

일부에서는 수사권 조정이 되면 경찰이 마구잡이 식으로 수사를 하게 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경찰의 주장대로 수사권 조정이 되더라도 경찰은 수사 개시.진행권이라는 극히 제한된 수사권만 갖게 된다. 반면 검찰은 기소권을 독점하면서 여전히 수사의 개시.진행.종결권은 물론 수사에 관한 일반적 기준 제정권과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 경찰의 강제수사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 등을 갖고 수사 절차를 주도하게 된다.

경찰의 소박한 꿈은 전체 범죄의 97%를 경찰이 수사하는 현실에 맞게 법적 뒷받침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경찰과 검찰의 관계를 상호 협력관계로 개선하는 것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맞는 수사 구조다.

'한 나라의 국민 수준을 알고 싶으면 그 나라의 경찰을 보라'고 한다. 우리 국민도 아름답고 정의로운 경찰을 가질 권리가 있으며,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다. 검찰이 모든 권한을 독점하는 봉건적 수사구조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그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사회 전체가 용기가 없거나 비겁하다는 역사적 비난을 받을 수 있다.

97%의 사건에서 경찰을 만나야 하는 국민은 경찰이 더 책임감 있고, 유능한 모습이길 바라고 있다. 물론 경찰이 수사 주체로서 하루아침에 자리를 잡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15만 경찰 중 일부는 국민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부족함은 스스로 대비하고 철저하게 준비하려 한다.

국민은 오히려 절실한 심정으로 현 상황을 응시하고 있다. 이 같은 국민의 목소리에, 그리고 수사의 협력자인 경찰의 목소리에 검찰이 귀를 막지 않았으면 한다. '검이독경(檢耳讀經)'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최광식 경찰청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