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 웃다 80年] 26. 총격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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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한국전쟁 때 눈 덮인 고지를 지키고 있는 국군 병사들.

전선은 계속 밀렸다. 6사단 2연대는 충북 충주에서 대전.김천을 거쳐 경북 군위까지 후퇴했다.

몹시 더운 날이었다. 군예대원들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매일 계속되는 강행군, 덜컹거리는 고물 트럭 위에서 온종일 시달리다 보니 파김치가 돼 있었다. 그날도 우린 학교 운동장에서 위문 공연을 올렸다. 그리고 주인이 피란 간 빈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요기만 할 참이었는데 대원들이 마루에서 잠들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을 잤다. 문득 눈을 뜬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대문 밖에서 북한 군인들이 땅에 엎드린 채 기어오고 있었다. 총열에 구멍이 숭숭 뚫린 따발총도 보였다.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 얼떨결에 카빈 소총을 집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그리고 대원들을 깨웠다. "조금만 더 잘게요." 대원들은 귀찮다는 듯이 눈을 떴다. 그러나 대문 밖을 보자 입이 쩍 벌어졌다.

우선 여자 대원들을 안방에 숨겼다. 그리고 남자 대원들을 네 패로 나누었다. 한 패는 장독대 뒤에, 두 패는 사랑방 앞에, 나머지 한 패는 부엌에 배치했다. 수시로 사격 훈련을 했는데도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대충 몸을 숨기고 총구만 밖으로 내민 채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다른 대원들도 비슷한 처지였다. 총구만 내밀고 마구 총을 쏘았다. 북한 군인들이 즉각 응사해 왔다. '따르르르륵!' 따발총 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한동안 총격전을 벌였다. 그런데 우리 뒤쪽에서도 총성이 울렸다. 수십 명은 족히 될 것 같았다. 앞뒤로 포위된 셈이었다. '이젠 꼼짝없이 죽는구나'. 눈 앞이 깜깜했다.

집 뒤의 총성이 갈수록 커졌다. 나는 대원 둘을 데리고 집 뒤의 담으로 갔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들은 북한군이 아니라 국군이었다. 재편성돼 전선으로 가던 1연대 병력이었다. 그야말로 죽다가 살아난 심정이었다. 국군은 포위망을 좁혀 북한 군인들을 생포했다. 고작 네 명이었다. 그들은 정찰 임무를 띤 북한군 척후병이었다.

죽을 고비를 넘긴 군예대원들은 경북 경산의 하양면으로 갔다. 2연대는 하양중 운동장에 진을 쳤다. 군예대는 새 임무를 맡았다. 피란민 속에 끼어든 간첩을 색출하는 일이었다. 당시 하양의 금호강변 모래밭에는 10만 명 가까운 피란민이 있었다. 무대에서 남을 웃기기만 하던 배우가 무슨 재주로 간첩을 잡겠는가.

간첩들의 위장술은 대단했다. 금호강가의 피란민촌에는 젊은 부부 교사가 있었다. 군위에서 피란왔다는 이들은 모래 위에 움집을 짓고 생활했다. 그리고 피란민 자녀들을 모아 글을 가르쳤다.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소식을 들은 2군단 사령부는 천막과 흑판, 그리고 공책 등을 보내주며 격려했다. 생계를 돕기 위해 쌀과 부식도 제공했다. 그런데 이들이 바로 간첩이었다. 몰래 북한 방송을 듣다가 발각된 이들은 결국 간첩임을 자백했다.

배삼룡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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