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스카우트 경쟁의 만화경(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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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대학스포츠의 스카우트를 얘기할 때 미인계(미인계) 가 동원된 기상천외의 에피소드를 빼놓을 수 없다.
69년 정월 스포츠계가 온통 폭소를 터뜨린 사건이다.
한양대는 축구선수인 고봉우와 노흥섭을 스카우트, 벌써 두 달 가까이 합숙훈련을 시켰다. 이들은 그 전해 나란히 진주농고를 졸업한 후 성균관대에 진학했으나 성균관대 축구부가 해산, 한양대가 재빨리 포섭했던 것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한양대는 이들의 입학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잠시 휴가를 준 것이 화근이었다. 오래 전부터 닭장밖에는 여우가 잠복해있었다.
고와 노는 휴가를 나온 그날로 중앙대의 임원과 선수들에 덥석 덜미를 잡혀 끌려가고 말았다.
그러나 이 정도로 힘없이 포기할 한양대가 아니었다. 한양대 체육부동문들이 연일 숙의를 거듭했다. 중앙대를 습격하여 실력으로 탈취해오자는 일전불사(일전불사)론도 나왔으나 채택된 대책은 미인계라는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한양대는 중앙대 축구부의 동정을 매일 체크하다 어느날저녁 명동S점에서 불고기파티를 연다는 정보를 입수, 이 찬스를 D데이 H아워로 잡았다. 한양대 측은 이미 노흥섭을 포기하고 고봉우만을 겨냥했다. 고는 단신이나 발 재간이 좋고 재빠른 명 공격수였다.
중앙대의 파티가 무르익었을 때 묘령의 아가씨가 현관에서 고와의 면회를 청했다. 고는 여전히 엄중한 감시와 보호를 받고 있었으나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는 앳된 아가씨가 설마 한양대의 첩자인줄을 중앙대 측의 누구도 의심할 수 없었다. 더구나 여인의 가슴엔 모 여대배지가 빛나고 있었다.
고도 방문을 열고 바라보니 아는 아가씨였다.『이게 웬일인가』하고 의아해 하면서도「잠깐」의 면회를 허락 받고 현관으로 나왔다. 그 순간 현관밖에 몸을 숨기고 있던 한양대 측 일당이 고를 냉큼 잡아채 대기시켜놓은 승용차에 쑤셔 넣고는 줄행랑을 쳤다. 눈 깜짝할 새의 날치기였고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온 중앙대선수들의 시야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를 유인한 아가씨는 당시 장안의 일류주점이던 라틴 쿼더의 호스티스였다.
고는 이곳에 몇 번 들른 적이 있었고 상당한 미인이었던 이 가짜 여대생에 호감을 품고있던 터였다.
한양대의 007미인재가 최후의 승리를 장식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사건은 기상천외한 책략이 화제가 되어 세간에 미소를 뿌렸지만 대학스포츠가 오로지 목적달성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좋은 실례가 된다.
스카우트경쟁의 승부를 결정짓는 최강의 무기는 사실납치도 미인계도 아니며「돈과 입김」이다.
먼저 입김이란 게 뭔지 보자. 가장 표본적인 사례가 축구의 박종원 케이스.74년의 일이다.
박은 차범근에 이어 경신고가 배출한 발군의 공격수로서 73년도 고교축구의 랭킹1위였다. 박은 선배 차범근을 쫓아 고려대에 진학키로 되어있었고 합숙훈련도 했다.
그러나 그 전해 고려대에 차범근 황재만 등 대어들을 뺏긴 연세대는1년 동안 절치부심(절치부심)하다 총력 스카우트 전을 전개, 이미 조광래(진주고) 허정무(영등포공)등 노른자위를 확보해 놓은 후 나아가 박종원마저 휩쓸어 고려대를 철저히 파괴할 심산이었다.
연세대는 일선실무자만으로는 역부족임을 깨닫고 당시 모 정당사무총장인 K동문회장에게 영향력을 발휘토록 호소했다.
K총장은 즉각 소속당 소속 전주출신 국회의원에 지령(?)을 내렸고 결국 국회의원의 설득과 회유가 주효, 박은 연세대로 급선회하고 말았다. 박은 청주가 고향이며 집안이 풍족한 편이다.
금전의 개재로 사태를 일거에 반전시킨 예는 황금의 투수 최동원이 대표적이다. 77년 경남고 졸업당시.
최는 오래도록 연세·고려의 경쟁 틈바구니에서 주가가 오를 대로 올랐다.
그러나 고려대가 유리했다. 고려대의 모 고위관계자는 최의 부친을 찾아가 정중히 큰절을 세 번 올리고 5백만원상당의 사례를 표시했다. 최의 부친은 흡족해 했으며 이로써 고려대 행이 결판난 듯 했다.
그러나 며칠 후 최는 갑자기 연세대로 진로를 바꾸고 말았다. 도저히「황금의 팔」을 놓칠 수 없었던 연세대는 큰절 세 번 대신 5백만원의 세 곱인1천5백만원 상당의 큰 사례를 쾌척, 최의 부친을 사로잡은 것이다.<박군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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