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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대통령의 종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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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엊그제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 재미난 기사가 실렸다. ‘대통령의 종말’이라는 제목의 한 면짜리 기획인데 현대정치의 위기를 짚은 분석이 사뭇 흥미롭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요즘 대통령 하기 쉽지 않다는 거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사상 최저의 지지율로 체면을 구기고 있지만 꼭 그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프랑스는 단두대에서 왕의 목을 자른 혁명을 치렀지만, 앙시앵 레짐의 향이 짙은 엘리제궁을 여전히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는 권위적 정치유산을 가진 국가다. 오늘날까지 유효한 제5공화국 헌법이 강력한 대통령 권한을 보장한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다. 하지만 현대판 군주였던 샤를 드골 대통령한테 맞게 재단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한 대통령은 드골 이후 하나도 없었다.

 후임자 스스로의 책임도 있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은 미국식 정치를 지향해, 특히 가족을 노출시킴으로써 대통령이라는 성역에 균열을 낸 첫 책임자다. 프랑수아 미테랑이 그나마 대통령의 권위에 맞는 카리스마를 회복하는 듯했다. 하지만 “게으른 군주” 이미지의 자크 시라크가 균열을 더 키웠고, “부인 브루니 앞에서만 진지한” 니콜라 사르코지는 성역의 잔해마저 없애버렸다.

 그러나 불가항력적 측면이 더 컸다. 미테랑은 사실 운이 좋았다. 후임자들처럼 세계화 소용돌이 속에서 대통령의 무력함을 노출시키지 않아도 됐으니 말이다. 오늘날 바닥에 떨어진 대통령의 권위를 회복하는 방법은 경기를 회복시키는 것 말고는 없다는 걸 올랑드보다 뼈저리게 느낄 대통령은 없다. 그래서 더 가능성이 작다. 선출된 정치 권력보다 시장 권력이 훨씬 막강한 까닭이다. 독일 철학자 한스 블루멘베르크가 말하는 ‘무력한 권력의 역설’이다.

 사실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무력한 권력이 목격된다. 세계에서 가장 힘센 국가지만 오늘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국내외적으로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꼽을 게 많지 않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왕적 대통령이라 하지만 기득권층 앞에 선 소수 대통령이, 광우병 촛불에 포위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백골이 된 유병언에게 발목 잡힌 대통령도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르몽드 기사는 미래도 비관적이다. 제도가 보장한 절대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프랑스 대통령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떨까.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뭘 고민해야 할지 거기에 답이 있다.

이훈범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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