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속에 갇혔던 호기심과 정열을 조금은 남겨두자|이젠 스스로의 제복 가질 때|"끝없는 미래의 가능성을 앞당겨 살아갈 필요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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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세상은 하루가 무섭게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드디어 교복조차 없어질 날이 멀지 않았고 제복을 벗어 던진 여생들이 각종 클럽활동을 통해서 또는 자연스런 이성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나 호기심으로 어떤 이성적인 통계에 앞서 밀어닥치는 물결처럼 분방한 남녀교제가 성행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지금도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든 채 손을 잡고 어둑한 거리에 몸을 맞대고 서있는 모습을 볼 때 더욱 자신이 어절 수 없는 기성세대임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점에 대한 그리움은 당연하다. 그리고 20세 미만의 나이에 있어 그리움은 가장 순결하며 타산이 없는 몰아의 사람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무분별의 되돌릴 수 없는 흠으로 남기기 쉬운 것도 그 나이다.
글쎄, 어느 정도까지라야 된다고 이미 때묻은 세대인 내가 어떻게 선을 그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생각해 보자. 이제까지 우리가 입고 다녔던 교복, 그 하나의 통제와 구속력만이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행동하자.
이미 우리는 거리에서, 분식센터에서 제복의 남녀 학생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모여서 방담하는 모습이나 한적한 공원에서 단둘이 앉아 있는 모습들도 별거부감 없이 자주 보아 오고 있는터다.
앞으로 교복을 벗어 던지고 옷매무새부터 자유와 개성의 존중이란 미명아래 각양각색으로 분방해진다면 그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 어찌 미리 걱정부터 앞서지 않겠는가.
사실 이제까지는 제복이라고 하는 하나의 보증서와도 같은 틀 속에 가둬 집밖으로 내보냄으로써 부모들은 무엇인가 조금 안도해 왔으며 그것은 또한 집밖의 사회에 대한 보호의식의 표현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됐든 이제 그 제복은 곧 저 역사 속으로 사라지려 하고 있다.
특히 우리의 예쁜 딸들이여, 이제 스스로의 옷을 갖도록 하자.
자유 속에서의 통제, 그리고 최후의 자존심을 잘 간직할 수 있는 자기만의 독특한 옷을 입도록 하자.
어제까지의 제복이 그대로 무거운 철갑이었던 것을 스스로 증명하자.
바라건대 너희들은 아직 결정적인 순간에 서서는 안될 나이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너희에게 걸맞는 스스로의 규범을 찾아 흡족하도록 간직해야 한다.
너희들의 끝없는 호기심과 분류와도 같이 뻗는 꿈과 정열을 전부 내뿜지는 말고 아직 조금은 아껴 두어라.
너희의 팽팽하게 부푼 머리와 몸 속에 담고 있는, 그 중에서도 더욱 많은 것을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남겨두면 좋으리라.
그 깨끗한 자산은 더욱 성숙되어 꼭 너희가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나이에 맞지 않은 우울한 아이가 되지 말아라.
너희가 책임져야 할 분량은 절대적이고 너희의 능력은 그리 많지 못하다.
아직은 너희 힘에 부치는 큰 부담을 절대로 만들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 너희의 꿈에 어울리지 않는 실수를 하지 말아라.
너희는 말하겠지. 기성세대의 자 (척)로써 새 세대의 물결을 타고 있는 우리들을 잴 수는 없다라고.
그러나 너희에겐 분명히 한계가 있다. 너희 힘만으로 질수 없는 무거움, 그것은 부모에게 결국 떼밀려 지고 부모의 아픔으로 돌아오고 만다.
너희는 끝없는 미래에 대한 가능성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미리 앞으로의 세계를 앞당겨 살아버리는 조노의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그 나이·그 세대가 주는 의미를 씹듯이 음미하며 보내 보아라.
한국의 말들이여, 옷 밖으로, 집밖으로 뛰어나가려는 자신을 한 서너번 쯤은 붙잡아 앉혀라.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 보고 행동하여라.
부디 자애 하여라. 자애라고 하면 이기심을 뜻할까봐 두렵고 사랑하라고 하면 무책임하게 던져 버릴까봐 겁나지만 총명한 너희들은 내 뜻을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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