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이전, 국민투표법 적용했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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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년퇴임한 김영일(사진)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9일 "지난해 신행정수도 건설법 헌법소원 당시 헌법 제72조를 적용했더라면 지금처럼 정부의 후속조치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재판관은 이날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연구모임인 'P(폴리시)-마트'초청 강연에서 "당시 관습헌법이라고 꽉 막아 놓으니 (정부가 애초 계획안에서) 이것저것 빼고 옮긴다고 하는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 전 재판관은 지난해 수도 이전 관련 헌재 결정 당시 헌법 제72조를 위반한 위헌이라는 의견을 냈었다. 헌법 제72조는'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는 "헌법 제72조에서 규정한 재량권은 국가 중대사에 대해 국민투표에 부치라는 것이지 대통령이 마음대로 하라는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전 재판권은 "수도를 옮기는 비상조치에 대해 5년 단임인 대통령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며 노 대통령을 비난했다.

그는 수도 이전 관련 헌재 결정 당시 뒷얘기도 소개했다. 김 전 재판관은 "헌재 결정 당시 재판관 사이에 처음에는 관습헌법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며 "그러나 (관습헌법을) 워낙 여러 사람이 지지해 반대쪽은 입을 열지도 못했다"고 전했다.

김 전 재판관은 또 수도 이전에 대한 위헌 결정 이후 헌재에 쏟아졌던 일부 여권의 비판에 대해 불편한 심기도 드러냈다. 그는 "자기와 생각을 달리한다고 헌재의 결정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쏟아내는가 하면, 헌재의 존립과 관련해서도 차마 들을 수 없는 말까지 쏟아냈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심판과 관련, 그는 "소수의견을 가진 몇 사람이 있었지만 고집 센 재판관 사이의 법률 해석 차이를 융화할 수 없어 소수의견도 발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전 재판관은 '헌재 재판관 임명에 대통령의 영향력이 너무 강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통령이 개혁한다면서 입법.행정.사법 다 건드리고 온갖 제도와 절차를 다 뒤집고 있는데 헌재라고 영향을 안 받겠느냐"며 "누가 추천하든 임명받은 재판관이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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