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더 밝은 미래를 내다보며 되새겨 보는 지난날의 허상과 실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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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3공화국은 급격한 변동의 시대였다. 근대산업사회건설을위한 국민적 에너지를 분기시킨 거대한 전환의 시기이기도 하다. 제3공화국의 출발점인 5·16은 4·19이후의 혼돈을 배경으로 한다. 부정선거에대한 항의가 도화선이었던 4·19는 그내면에 거칠은 정치와 무능에 맞선 국민적 저항이 깔려있었다. 이점에서 4·19는 변혁을 바라는 국민적 열망의 분출이었다.
그 과업의 수행은 민주당에 맡겨졌다. 그러나 권력의 중심이 무너진 뒤에 빚어진 힘의 진공상태와 경제파탄이란 유산을안고 민주당정권은 긴시간 비틀거렸다. 그들은 투쟁엔 익숙했지만 변화의 바람을 통합해 정치사의를 재조직하고 국민의 활력을 네이션빌딩(국가건설)으로 연결시키는데는 준비가 없었다. 그 때문에 조정되지 못한 사회 제세력의 갖가지 기대는 혼란으로 연결됐다. 그런 와중에서 군사혁명이 잉태되고급기야 5·16거사로 민주당정권은 붕괴되고 말았다.
5·16은 사회혼란과 참담한 민생고에 돌파구를 기대하는 민중의 잠재의식에 과녁을 맞히고 있었다. 제3공화국에서 제시된 지표는「조국 근대화」였다. 공화국 주역들이 근대화의 기치아래 힘을 쏟은 으뜸의 과제는 산업화였다. 때마침 60년대 선진국의 잉여자본은 한국의 산업화의욕과 접합해 급격한 성장으로 이어졌다. 고도성장에의 힘의 집중은 눈부신 변화를 가져왔다.
그렇지만 공업화에 치우친 근대화는 새로운 사회적 모순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지역간·계층간·산업간의 격차라는 2중구조, 빈부의 격차로 인한 상대적 빈곤이 새로운 문제로 등장한 것이다. 그위에 정부가 주도하는 개발은 특혜와 부조리라는 부패현상을 수반했다.
급격한 성장이 치른 또하나의 댓가는 민주정치 과정의 회생이다. 정치의 효율성과 능률의 강조는 필연적으로 시간이 걸리는 의회정치 과정보다는 일사불란한 행정에 더 가치를 부여한다. 행정권이 강화되는 반면 상대적으로선거·정당·국회등 정치영역이 축소·약화·경시됐다. 고도성장의 그늘과 정치의 여과기능의 축소로 크고 작은 파동이 끊임없이 점멸하게 된다. 제3공화국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그것이 이룩해 놓은 급격한 변동들로 인해 그 시기는 분명 우리들 역사의 한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제3공화국이 쌓아올린 축적은 더러는 도약의 밑거름으로, 또 더러는 고통스런 부담이 되어 오늘의 바람을 이루고있다. 정령 제3공화국은 오늘과 직결된 어제의 현실로 우리에겐 생생한 기억으로 살아있다.
그 실상을 재조명하고 그날의 현실에 접근하기엔 너무 가까운 과거일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제3공화국도 역사속에 묻혀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과거의 사건과 미래를 합한 우리들 목적과의 대화」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제5공화국의 새질서를 향해 조바심하며 나아가고 있다. 제3, 제4공화국의 축적을 바탕으로 하되 부패와 불균형등의 부정적 측면을 일신해 민주·정의·복지의 새사회의 건설을 지향하고 있다. 우리가 미래룰 선택할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보듯이 지난날의 역사에도 우리의 선택이 깃들어있다.
보다 나은 선택을 위해 경험의 진실을 반추하는 일은 의미가 있다. 역사는 오늘의 문제해결에 넓온 안목을 제공해준다. 연재물「제삼공화국」은 미래에 대한 경건한 소망을 담고 어제의 현실에 접근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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