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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기습 개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금년 신정연휴는 신문사로서는 바쁜 연휴였다. l일부터 3일까지 통금해제, 학생의 교복 및 머리모양 자율화, 개각등 큰 기사가 매일 터졌고 두 번이나 호외를 냈다.
그러느라 서울에서 머물던 신문사 직원들이 두 차례나 비상소집됐고 모처럼 지방에 내려갔던 기자들은 동료들에게 면목이 없게 됐다.
연휴중에 개각을 하게된 이유를 청와대대변인은『보안유지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보안은 철저히 유지됐던 것 같다.
사전에 통고를 받은 극히 제한된 사람을 제외하고는 당사자들도 까맣게 모를 정도였다.
경질된 각료중에는 신년구상에 관해 인터뷰를 해놓은 사람도 있고, 연휴 중에 기분좋게 지방에 내려갔던 사람도 있었다.
12월16일·임시국무회의에서 당시 남덕우국무총리가 『개각실에 동요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고 한 지시가 너무 약효를 냈다고나 할까.
남총리의 그 지시로 마치 초읽기를 방불했던 당시의 개각설은 상당히 진정됐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보면 그것은 고작 해봐야 잠시의 유예였을 뿐이다. 그 때도 이미 재계에서는 유창순총리-김준성부총리-나웅배재무설이 패키지로 나돌았다.
그 소문과 최종결정사이의 과정을 자세히는 알기 어려우나 적어도 그러한 구상이 오래 전부터 싹트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개각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 근거가 제시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설득력을 지녔던 것은 새시대=새사람의 등식이다. 과거와는 무관하게 하늘에서 떨어졌거나 땅에서 솟은 사람이 없는 이상 어느 정도의 사람이면 과연 새사람이냐 하는데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겠으나 아뭏든 구시대 이미지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 사람은 교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민정당을 필두로 새시대의 주역이라 할만한 사람들의 대개 공통된 생각이었고 국민들에게도 상당히 공감의 폭을 지녔던 것 같다.
둘째는 경제팀에 대한 기업등 경제계의 회의다. 명쾌한 경제이론을 지녔던 전 경제팀의 시책에 대해 재계에서는 너무 이론에 편향해 실물경제와는 간격이 있다고 비판했다. 경제계측에서는 기회있을 때마다 이러한 문제들을 지적했고 1·3개각으로 나타난 이론경제파의 퇴진과 실물경제파의 등장은 재계의 견해의 전폭 수용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만큼 앞으로의 경제현상에 대한 경제계의 공동책임도 커졌다고 봐야 한다.
전에 개각설이 나오면 청와대쪽에서는 장관들이 일을 익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여유를 주어야 한다든가 한꺼번에 여럿을 바꾸는 개각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사람을 바꾸는 보각이 합당하다는 등의 얘기가 나왔다.
물론 사람을 바꾸는 게 능사일수는 없다. 이상할 정도로 우리사회에서 개각문제에 대해 지나친 관심들을 쏟고 있지만 대통령제아래서 각료를 바꾼다는 게 그렇게 야단스러울 일은 못된다.
우리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는 개각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나 의미에 상응하는 정도의 관심의 대상으로 축소되어야만 할 것 같다.
그렇긴 하지만 새시대, 새공화국의 출범을 선언한 이상 사람에 있어서도 과거의 이미지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계기는 필요하다.
그러려면 사람을 바꾸는 게 능사는 아니더라도 불가불 이미지조정을 위한 조각내지는 전면적성격의 개각도 한번쯤은 피하기 어려웠다.
그런 이미지조정의 과정을 겪은 후래야 내각의 안정성이나 개각보다는 보각이란 명제가 모두 설득력을 더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1·3개각은 그 같은 이미지조정의 한 과정이다.
적어도 총리와 경제팀의 색깔은 상당히 바뀌었다. 비경제팀의 색깔마저 언제 어느 정도 바뀌게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인물의 이미지 조정문제때문에 모두가 개각설같은 데나 쓸데없이 관심을 기울이고 난국타개를 위해 힘을 결집하지 못하는 낭비는 없어지도록 해야한다.
성병욱<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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