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가 오히려 '호가'만 올렸다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3면

토지시장이 두 갈래로 뚜렷이 갈리고 있다. 개발재료가 있는 곳은 갖가지 규제에 묶여 매물이 들어가는 바람에 거래 없이 호가만 치솟고 있다. 반면 소외지역은 더 가라앉고 있다. 내년부터 외지인이 농지.임야를 팔 땐 양도세를 실거래가 기준으로 내야 해 그 전에 팔려는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이 중에는 10~20년 된 해묵은 물건도 있다.

◆ 개발지역 주변 여전히 강세=서울에 사는 K씨는 최근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관리지역 농지 250평을 사려다 포기했다. 이곳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이자 투기지역이다. 국제평화도시 건설 등의 재료가 있어 투자하려 했는데, 평당 35만원에도 매물을 구하기 어려웠다. K씨는 "간혹 매물이 나오면 주인이 양도세를 매매가에 얹으려 하고, 다운 계약서(실거래가보다 낮춰 쓰는 계약서)까지 요구해 매입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인 충남 연기군의 경우 올 들어 공시지가가 11.6% 급등했다. 연기군.공주시 주변은 길이 없는 맹지(임야)도 평당 10만~20만원을 부른다.

충남 홍성.예산.청양, 충북 보은.청원 등지는 각종 규제로 묶여 있는데도 하반기 행정복합도시 토지 보상금이 풀린다는 기대감으로 매물이 들어갔다.

충남.태안.당진 등 서해안 일대도 규제 강화 이후 되레 매물이 줄면서 호가가 뛰었다. 동탄 신도시 건설과 수원~평택고속도로 건설 예정지 주변인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봉담읍.동탄면과 평택시 오성면.팽성읍 등도 토지거래허가구역 등의 규제를 비웃듯 땅값이 강세다. 이처럼 투자자들이 찾는 땅은 각종 규제에 묶여 매물 회수→거래 감소→호가 상승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외지인이 농지.임야를 사려면 전 세대원이 6개월 이상 살아야 하고, 투기지역에선 실거래가 기준으로 양도세를 내야 한다.

JMK플래닝 진명기 사장은 "쓸 만한 땅은 규제에 묶여 매물로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 돼 투자 열기가 식었는데도 호가가 뛰는 왜곡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재정경제부.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전 국토의 15.3%인 46억3400만 평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고, 토지투기지역도 40여곳에 이른다.

◆ 소외.낙후지역 더 가라앉아=규제가 없는 소외지역은 매물이 오히려 늘었다. 10~20년 놀려진 수백만 평짜리 땅도 한꺼번에 급매로 나와 있다. 세금 부담이 늘기 전에 팔기 위해서다. 내년에 외지인 소유의 땅에 대해 실거래가 기준으로 양도세를 물리면 사실상 모든 곳이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취득세.종합토지세.양도세의 기준이 되는 개별 공시지가도 계속 오르게 된다. 개발할 경우 내야 하는 각종 부담금도 덩달아 뛸 전망이다.

최근 서울 강남 한 컨설팅업체는 A기업으로부터 경북 봉화군의 임야 500만 평을 팔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20년 전 광산 개발을 위해 샀다가 인.허가가 나지 않아 묶인 땅이다.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보유세가 늘고 양도세도 많아지게 돼 서둘러 팔려고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경기도 포천 일동면 임야 400만 평도 매물로 나왔다. B사가 레저타운을 만들기 위해 샀다가 10년 남짓 놀려둔 땅인데, 양도세 실거래가 제도 시행 전에 내놓은 것이다. 현도컨설팅 임달호 사장은 "이용가치가 떨어지는 땅은 갈수록 팔기 어려워져 시장 양극화는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투자 체크포인트=외지인이 투자 목적으로 땅을 사기도 어렵지만, 땅값이 올랐다 해도 실거래가로 양도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적다. 김종필 세무사는 "세금 부담이 종전 공시지가로 낼 때보다 많게는 3~10배 늘어나므로 요즘 호가가 급등한 곳도 신규 투자는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덩치가 크거나 당장 개발이 어려운 땅은 올해 안에 파는 것이 낫다. 주용철 세무사는 "종전엔 땅은 오래 보유할수록 이득이라는 인식이 있었으나 앞으로 이용 가치가 낮은 땅은 세금 부담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서둘러 매각하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성종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