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쿠웨이트 "한낮에는 일하지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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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실외에서 일하지 마라'. 쿠웨이트 정부가 지난 1일 발표한 '노동 금지령'이다. 파이살 알하지 사회.노동부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6 ~ 8월 중 대낮 노동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체감온도가 60 ~ 70도에 달하는 가마솥 더위로 일사병 환자가 속출하기 때문이다. 쿠웨이트 국립병원의 우마르 무크타르 박사는 "여름철에는 열사.일사병 환자로 병원이 가득 찰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 병원에서만 지난해 27명이 일사병으로 숨졌다. 회복된 일사병 환자들도 기억상실 등 뇌에 심각한 장애를 입었다고 박사는 덧붙였다.

여름에 병원에 실려오는 일사병 환자 대부분이 인도.파키스탄.동남아 등 제3세계 외국인 노동자다. 산유국인 쿠웨이트에서는 거리 청소.배달.토목 등 소위 '더티 잡(dirty job)'은 99% 외국 노동자의 몫이다.

이 때문에 자국인 275만 명의 소국 쿠웨이트에는 18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북한 출신 건설 노무자만 2000여 명에 이른다. 쿠웨이트인들이 한여름에 실외에서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외국인 노무자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여타 아랍 국가에서는 아직 쿠웨이트처럼 '대낮 노동 금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들 국가에도 물론 노동 규정이 있다. 이집트도 기온이 40도가 넘을 경우 실외 노동이 금지되는 노동부령이 이미 1960년대 마련됐다. 하지만 이는 사문화된 규정일 뿐이다. 현재 카이로 기온은 37 ~ 39도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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