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환율 나홀로 강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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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올 들어 국제 외환시장에서 원화 환율만 '나 홀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유로화의 대 달러 환율은 지난 2일 1.2272달러로 마감돼 지난해 말(1.3558달러)에 비해 통화가치가 9.5% 하락했다. 엔화 역시 같은 날 달러당 108.25엔으로 지난해 말(103.76엔)보다 4.1% 절하됐다.

영국 파운드화와 스위스 프랑화도 같은 기간 중 달러화에 대해 5.4%, 9.0%씩 가치가 떨어졌다. 태국 바트화(4.5%)와 인도네시아 루피아화(3.1%), 싱가포르 달러화(2.4%) 역시 올 들어 달러화에 대해 약세를 보였다.

이에 비해 원-달러 환율은 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1012.8원으로 마감돼 지난해 말(1035.1원)보다 통화가치가 오히려 2.2% 상승했다. 달러 환율이 원화와 비슷한 추세를 보인 통화는 올 들어 1.2% 절상된 대만 달러 정도다.

이런 흐름은 미 달러화 가치가 세계적으로 오름세로 돌아선 지난 4월 말 이후만 따져도 엇비슷하다. 유로화는 달러화에 대해 4월 말 이후 한 달여 동안 4.3% 절하됐고 엔화도 같은 기간에 2.2% 가치가 떨어졌다. 그러나 원화는 같은 기간 1.6% 절하되는 데 그쳤다.

달러화가 최근 강세로 돌아선 것은 유럽헌법이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잇따라 부결되면서 유럽 각국의 경제 사정이 앞으로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달러화에 대해 원화가치가 덜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직 국내 외환시장에 달러가 넘치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이 조금만 오를 조짐을 보이면 기업들은 그동안 쌓아뒀던 달러화를 시장에 쏟아내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들도 주식시장에서 최근 나흘간 순매수를 보이는 등 국내에 달러를 유입시키고 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달러 환율이 1010원을 넘으면 기업 보유 물량이 대량으로 나오며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며 "기업들은 원-달러 환율이 크게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국내 기업들도 수년간 계속된 달러화 약세 현상이 마무리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리먼 브러더스가 연말 달러-유로 환율을 당초 1.4달러에서 1.3달러로 낮추고 달러-엔화 환율을 90엔에서 100엔으로 올리는 등 달러 강세를 점치는 투자은행들이 늘고 있어 원화도 장기적으로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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