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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시장원리에 맡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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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시장경제보다 관리경제가 더 유익한가? 정부가 자영업 대책을 발표한 이후 불거지는 논란이다. 정밀하지 못한 정책 때문에 영세 소매상을 도와준다는 선의의 목표까지 실종돼 버린 느낌이다. 동네 가게마저 통제한다는 인상을 준다면 애당초 정책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경제활동인구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자영업이 뒤뚱거리면 한국 경제의 앞날은 어둡게 마련이다. 농업시장 개방 이후 60조원 이상의 지원금이 풀렸지만 유통시장 개방 이후 자영업 분야에는 제대로 된 정책 하나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대책은 첫 종합정책이자 공급과잉.과당경쟁에 짓눌린 자영업에 대한 당국의 위기의식과 고뇌를 감지할 수 있다. 진입 문턱을 높이고 퇴출 압력을 강화하면서 예산까지 투입하겠다는 데서 구조조정을 위한 당국의 정책의지를 읽을 수 있다. 미국.일본에도 내용은 다르지만 영세 소매업자들을 위한 정책들이 있다.

그러면 이번 대책에 대해 왜 집권여당 내부에서까지 비판 여론이 들끓는가. 한마디로 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시장 실패를 관 주도로 바로잡겠다는 과잉의욕이 논란을 자초하는 형국이다. 자영업 지원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자영업자나 재래시장 상인들의 자율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시장참여자들이 의도한 방향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3년간 정부가 3713억원을 투입한 재래시장 시설 현대화 사업이 부분적인 성과에 그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가장 큰 문제는 창업 적성검사나 자격증을 통해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유도하겠다는 당국의 발상이다. 과당경쟁과 수익성 저하라는 난제는 기본적으로 시장에 맡겨야 한다. 이미 금융회사들은 자영업계 대출에 대한 돈줄을 조이고 있다. 구조조정 압력이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정보 제공이나 분위기 조성에 그쳐야 한다. 지나친 참견이나 관치형 개입은 시장 흐름을 꼬이게 할 수도 있다.

정책 당국은 국민의 이중적인 시각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필요가 있다. 대다수의 샐러리맨에게 자영업은 과세 불평등으로 인한 불만의 대상이자 퇴직 이후 삶의 대안이기도 하다. 자칫 당국의 과도한 개입이나 지원은 '퍼주기'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어려워진 살림살이로 세금에 대한 국민의 신경이 가뜩이나 날카로운 게 현실이다.

이런 때일수록 세련된 정책이 요구된다. 정책을 집행하기에 앞서 종합적인 실태조사가 우선이다. 과학적인 지표로 나침반을 삼아야 국민을 설득하고 자영업자와 재래시장 상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종합대책 마련에만 급급하면 대책을 위한 대책에 그칠 공산도 크다. 정책의 핵심이 자영업과 재래시장의 경쟁력 강화라면 전국 256개 지자체가 먼저 현실에 맞는 대책을 짜고 중앙정부는 심사를 통해 차별적 지원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백화점식 종합대책보다 맞춤식 지원정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정부가 1996년 유통시장 개방 때 제대로 대책을 세웠다면 오늘날과 같은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정책을 수정 보완해야 한다. 친(親)시장적인 정책만이 쓸데없는 논란을 잠재우고 제대로 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금은 자영업계나 재래시장도 당국의 선택과 집중을 희망하는 형편이다. 재활의지가 없거나 경쟁력을 상실한 업소는 시장에 맡겨 미련 없이 도태시켜야 할 것이다. 스스로 자구노력을 하면서 재생할 가능성이 큰 곳은 전문가들의 엄격한 평가를 거쳐 과감히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 유통서비스 분야가 제대로 탄력을 받으면 불황 돌파의 선봉에 설 수도 있을 것이다.

변명식 한국유통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