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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일자리 창출 앞장 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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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는 데 6일을 필요로 했다. 그때는 그러나, 노동조합이 생기기 이전이었다'라는 익살 섞인 경구가 있다. 하나님조차 노조의 힘을 당해내지 못해 천지창조 일정을 늦추었을 것이라는 풍자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조에 이어 터져나온 부산항운 노조의 '채용 장사' 혐의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잇따른 폭력사태는 지금 우리에게 노조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하게 한다. 몇 해 전 개봉된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의 노동운동은 쉬는 날 없이 작업에 시달리면서도 굶주림에 떨던 어린 여공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찾아준 밑거름이었다. 그래서 35년 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이다.

반면 1955년 아카데미 상의 작품상 등 8개 부문을 휩쓴 미국 영화 '워터 프런트'에서의 노조는 부둣가 하역 작업에 걸린 이권을 놓고 노조원을 등쳐먹고 부패와 폭력을 일삼던 집단이었다.

경제학의 실증 연구에서도 노조는 근로자를 대표하여 노사 간 거래 비용을 낮추는 등의 순기능을 하기도 하고, 기업을 망하게 하는 최악의 '경제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이 순기능과 역기능은 노조의 파업권이 합리적인 범위에 있는지 여부에서 갈라졌다.

기아차 광주공장이나 부산항운 노조의 채용 장사는 민주화 과정 이후 브레이크 없이 커 온 노조 권력의 부패 문제다. 하지만 강성 노조는 부패 문제를 넘어 우리 경제의 최대 화두인 '일자리' 창출을 망가뜨린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노조의 힘이 사측이나 정부조차 건드리기 어려울 정도로 세지면 노조는 파업 으름장을 놔 자신들의 파이를 생산성 이상으로 늘리고 결과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어 일자리 창출 능력을 떨어뜨린다.

대기업 노조가 임금을 올리면 대개 그만큼의 비용은 고스란히 하도급 업체로 떠넘겨져 하도급 업체 근로자의 임금이 깎이거나 신규 채용을 줄인다. 울산 효문공단의 자동차 부품업체 간부는 "현대자동차 노사가 임금협상을 벌일 때마다 납품 단가가 도마에 오르고, 결국 우리 직원들에게 약속했던 임금인상 폭을 줄여야 했다"고 하소연했다. 강성 노조의 활동으로 노동시장의 윗목과 아랫목이 양극화되는 것이다.

또 기아.현대차는 예상했던 것보다 잘 팔리는 차종이 있을 경우 이 차종의 조립 라인으로 재빨리 근로자를 배치 전환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는 근로자들이 조립 라인을 옮길 경우 노조 특정 계파의 대의원 수가 변할 수 있어 해당 계파가 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기아차 사건 이후 타격을 입은 노조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일자리 장사가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야 한다. 이미 일자리는 전 세계적으로 저임금 기능직의 경우 임금이 싼 나라로 옮겨가고, 고임금 지식업무는 첨단 두뇌가 공급되는 곳으로 옮겨가는 등 글로벌 경쟁 구조에 들어가 있다.

임금이 우리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중국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려면 우리 근로자의 기술부가가치가 10배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노조가 무엇보다 근로자의 교육훈련 등 경쟁력 향상에 앞장서야 한다. 민주노총도 노사정 대화의 테이블로 돌아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대기업 노조가 권력 다툼에만 열을 올리고 생산성 향상에 무관심하면 청년층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영렬 경제연구소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