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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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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82년 1월 5일 밤부터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됐다. 광복 이후 37년 만의 일이다.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을 금지시켰던 명분은 안보와 치안 유지였다. 밤에 활동하는 사람들은 주로 사회 불순세력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전두환 정부는 통금을 해제해도 안보나 치안 유지에 별 지장이 없고 오히려 경제활동에 도움이 된다며 통금 해제를 단행했다. 통금은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을 유치한 나라의 체면을 손상시킨다는 판단도 있었다고 한다.

통금 해제에 대한 색다른 해석도 있다. 전두환 정부가 쿠데타를 사전에 막기 위해 통금을 없앴다는 것이다. 쿠데타를 일으키려면 야간에 남몰래 군 병력을 움직여야 하는데, 통금이 없어지면 병력의 은밀한 이동이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부인 만큼 쿠데타를 가장 걱정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요즘처럼 휴대전화가 널리 보급된 상황에서는 쿠데타가 힘들다는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쿠데타는 '국가에 대한 일격'이란 의미의 프랑스어다. 지배계급 내의 일부 세력이 무력 등의 비합법적 수단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행위가 쿠데타다. 쿠데타는 은밀하게 계획되어 기습적으로 이뤄진다. 무솔리니.히틀러 등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프랑스어인 쿠데타란 말이 널리 쓰이는 것은 18세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쿠데타 등 쿠데타의 전형적인 사례가 프랑스에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르윈스키 스캔들'이 터진 직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앨 고어 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이건 빌어먹을 쿠데타야"라고 소리질렀다고 한다. 클린턴 때리기에 앞장섰던 미국 인터넷 언론 '드러지 리포트'의 보도다. 르윈스키 스캔들은 클린턴이 백악관 인턴 직원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던 사건이다. 이를 폭로해 대통령의 권위를 망가뜨리는 행위를 쿠데타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르윈스키 스캔들은 클린턴 탄핵으로 이어졌고 미국 민주당은 이를 "공화당의 쿠데타"라고 주장했으니, 스캔들 폭로가 쿠데타의 시작이었다고 볼 수도 있을 법하다. 권력자에 대한 비판이나 스캔들 폭로를 쿠데타 기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쿠데타를 당해본 경험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이세정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