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8000여 명이 산 즐기는 법 배워 갔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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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지난달 31일 탤런트 이훈씨(오른쪽)와 함께 북한산을 찾은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가운데). 이 학교 졸업생인 이훈씨는 등산 친구인 동료 탤런트 김유석씨(왼쪽)에게도 입학을 권했다고 한다.

'멋진 윈드재킷과 청바지를 유니폼처럼 챙겨 입는다/스틱은 노인들이나 드는 거라고 생각한다/땀을 많이 낼수록 기분이 좋다/비상식으로는 육포가 최고다….'

등산에 관한 일반의 상식 중엔 잘못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최근 2~3년 새 웰빙 붐과 주 5일제 근무 바람을 타고 주말마다 산을 찾는 사람이 300만 명까지 늘었다. 하지만 다들 별 지식 없이 덮어놓고 산에 오르다 보니 실족.저체온증.조난 등 사고가 잦다.

코오롱등산학교의 이용대(68) 교장은 "등산을 놀이쯤으로 가볍게 여기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라며 "등산의 과학적인 측면을 제대로 배워 안전하게 산을 즐기는 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돼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한국등산학교와 함께 국내 등산교육의 한 축을 담당해온 코오롱등산학교가 5일로 개교 20주년을 맞는다.

그간 배출한 졸업생이 8000여 명. 전문 산악인뿐 아니라 공무원.기업인.경찰.주부 등 각계각층을 망라한다. 암벽타기나 설상.빙벽 등반이 주축인 고급 코스 외에 산악 보행법, 지도 보는 법 등을 가르치는 기초 과정도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냥 걸으면 되지 무슨 보행법을 배우느냐고들 하죠. 하지만 배낭을 지고 가파른 산을 오르자면 척추와 관절에 무리가 갑니다. 올라갈 땐 발바닥의 앞쪽을 먼저 딛고 뒤꿈치를 내려놓는 식으로, 내려올 땐 발바닥 전체로 땅을 디뎌야 몸이 상하지 않죠."

이 교장은 위에 언급한 잘못된 상식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간 자칫 생명을 잃는 대형 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고 했다.

"등산할 땐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자연환경에 대비하는 자세가 필수입니다. 그런데 비상시에 꺼내입는 윈드재킷을 평소에 입으면 비바람이 심해졌을 때 몸을 보호할 추가장치가 없어져요. 청바지도 젖으면 체온을 금방 빼앗아가니까 절대 입어선 안 됩니다. 산에선 체온이 30도 이하로 떨어지면 1~2시간 내에 사망하기도 하니 아주 위험하죠."

코오롱등산학교 39기 졸업생인 탤런트 이훈씨는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했다. "친구들과 지리산을 종주하다 무릎을 다쳐 뒤처진 뒤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요. 겨우 산장을 찾아 목숨을 건진 뒤 등산을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 6주 과정의 정규반을 마친 그는 "이젠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등산할 때마다 일행을 통솔한다"며 웃었다.

20대 후반부터 산을 탄 이 교장은 1985년 코오롱등산학교가 문을 열 때 산파역을 했다. 국내 산악계엔 등반 이론의 권위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매주 일요일이면 북한산 인수봉 일대에서 학생들을 이끌고 암벽 등반 실기수업을 하는 그는 "배우가 무대를 떠날 수 없듯 산악인도 산을 떠나선 살 수 없다"고 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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