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으로 세상보기

파라솔을 든 개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모네가 그린 '파라솔을 든 여인'은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내게 할 만큼 인상파 특유의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훈풍에 휘날리는 하얀 드레스,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원색의 초원과 조화를 이루며 모네의 섬세한 예술적 감각이 빛과 색채로 살아난다. 그는 아내를 그리면서 그녀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고, 그의 소원대로 풍경과 하나가 된 듯한 카미유의 모습은 실제로 파라솔을 쓰고 캔버스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모네의 '파라솔을 든 여인'에 대한 소고(小考)의 일부다.

개미들 중에서도 '파라솔을 든 개미'가 있다. 이들은 나뭇잎을 잘라 물고 이동하기 때문에 파라솔을 든 것처럼 보여 '파라솔개미(Atta, Acromrymex 속)'라고 부른다. 이 개미들은 주로 아열대 또는 열대지역에 서식하며 한 집에 약 800만 개체나 되는 대가족을 거느린다. 이동할 때 길이는 무려 250m나 된다. 또한 이들의 붉은 허리와 녹색의 나뭇잎이 어우러져 꼭 녹색 조각을 붉은 줄로 꿰어놓은 목걸이처럼 보이기 때문에 장관을 이룬다.

이동하는 개미 중에는 파라솔을 쓰지 않고 그냥 대열을 따라가는 약간 작은 개미들이 있는데 이들은 호위개미다. 파리들 가운데는 개미의 머리에 알을 낳아 유충으로 부화시킨 뒤 유충들이 그들을 먹고 자라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기생파리가 있다. 이들은 기생파리가 파라솔개미들에게 알을 낳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 작은 개미들이 800만 마리나 되는 파라솔개미를 보호해 안전하게 집에 도착하게 하는 것이다. 몸이 작은 개미가 호위 역할을 하는 이유는 몸이 작아 나뭇잎을 물고 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마치 조정 경기에서 키가 작고 체중이 적은 사람을 주장으로 선정해 북을 치게 하고 북소리에 맞춰 몸이 크고 힘센 사람들은 노를 저어 나아가는 것과 유사한 전략이다.

개미학자들은 이들이 이 나뭇잎 조각을 가지고 어디로 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따라가 봤다. 개미들이 도착한 장소는 땅속에 만들어 놓은 이들의 집이었다. 개미들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계주하듯이 좀 더 작은 개미들이 집에서 나와 나뭇잎을 넘겨받아 개미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반복됐다. 몸이 큰 개미보다 작은 개미가 땅속에 있는 좁은 터널을 드나들면서 일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에 이들이 집에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개미학자들은 이들의 과학적 삶의 방식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 근처에서는 보통 개미의 몇십 배나 되는 큰 개미가 발견됐는데 이들은 병정개미로 적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개미학자들은 개미집 속을 관찰한 결과 성충들이 가지고 간 나뭇잎 조각의 나무즙을 빨아먹고 나서 그곳에다 곰팡이를 길러 유충을 먹이는 장면을 목격하고 또다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개미들은 나뭇잎 조각에서 곰팡이를 재배하는 농사법을 개발해 곰팡이 농사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개미 유충들이 곰팡이를 먹고 살아간다는 것도 신비로운 일이지만 개미가 나뭇잎을 잘라 집에 가지고 와 곰팡이를 기른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 냈는지 감탄할 따름이다.

동물 중에서 농사를 짓는 동물은 인간과 파라솔개미밖에 없다. 파라솔개미들은 이미 1억 년부터 유기농법을 개발했다. 이들은 나뭇잎에 곰팡이를 길러 유충을 기르고 나뭇잎은 퇴비로 만들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었다. 화학비료와 농약의 사용으로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켜 인간의 생존마저 위협받는 실태를 이 개미들이 본다면 어째 그리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근시안적으로 농사를 짓느냐고 크게 질책할 것 같다.

김병진 원광대 교수·곤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