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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데스크」메모 1981년을 되돌아본다(1)|「명문대미달이변」서「스승의 제자살해」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제5공화국이 출범했던 「81년」은 그 어느해 보다도 각종사건과 사고가 잇달았고 충격적인 시책발표도 많았다. 기자들은 뉴스의 현장을 쫓아 바쁘게 뛰었고 데스크들은 폭주하는 기사처리에 눈코뜰새가 없었다. 양대선거, 88년 서울올림픽 개최 결정, 정부기구축소등 큰 이슈들이 지면에 제대로 소화, 전달됐는지 또 한번 자생해본다. 이해가 역사의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데스크수첩」에 남아있는 것들을 정리, 한 해를 뒤돌아보는 송년특집으로 엮었다. <편집자 주>
유난히도 사건·사고가 꼬리를문 한해였다. 현장의 증인이 되어 밤낮을 뛰었던 사회부기자들도 연속되는 긴장탓에 참새가슴만큼이나 움츠러든 느낌이다.
1년내내 독자들 안방에 희로애락의 인간사를 전달했던 헤드라인의 메모철을 넘기며 한해의 사회상을 조감해본다.

<영하32도 동장군>
○…1월3일 정초, 온도계의 눈금을 수은주 아래로 곤두박질시킨 한파가 경기도양평을 기습. 관상대설치후 최저기록인 영하32도6분. 새해 사회면 머리기사의 첫손님으로 동장군이 등장했다.
냉장고가 보온기로 둔갑, 소주·맥주가 얼어터지는 것을 막기위해 들어찼고 민물고기가 냉동어가 되는가하면 주민들은 추위보다 두통에 시달려야했다.
새해 기상조화가 한해의 조짐을 예고하는 것일까.
○…연초의 기장이변은 곧이은대학입시까지 겹쳤다.
사상처음 본고사 없이 예시성적만으로 치러진 입시여서 수험생들은 가늠을 못해 우왕좌왕. 서울대·연대·고대등 세칭 일류명문대학에 유례없는 정원미달 사태가 일어났고 전국에서 3천8백66명이 정원미달.
1백84점의 예시성적으로 서울대법대를 지원, 여유있게(?)합격한 K모군(21)은 올해의 가장 용기있는 사나이로 등장. 서울대법대 예상 커트라인을 3백6점이라고 점치던 입시전문가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수험생들간에는 「눈치작전」아닌「배짱작전」이란 유행어가 생겼고 이 해프닝은 결국 문교부대학교육국장의 직위해제로 막을 내렸다.

<윤상군 찾기운동>
○…이윤상군(14)유괴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비공개수사 1백6일만인 2월27일.
공개수사가 되면서 신문·방송들이 취재경쟁에 불꽃을 퉁기기 시작했고 중앙일보는 윤상군의 누나 연수양의 범인 스케치를 곁들여 『연수양도 납치하려했었다』고 특종보도하는등 경찰도 미처 착안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로 한발앞서갔다.
범인조기검거와 자수를 권유하는 대통령의 담화가 있었고 전국적으로 윤상군 찾기운동이 메아리졌으나 그보람도 없이 윤상군은 1년17일만에 말없이 돌아왔다.
윤상군이 학교체육교사였던 주영형(28)과 그가 농락했던 두여학생의 희생물이 되었다는 점에서 온세상은 경악과 슬픔, 허탈감에 빠졌다.

<된서리 맞은 사학>
딸을 둔 부모들은 『자나깨나 딸조심, 자는 말도 다시보자』는 회화적 놈담들을 주고받았고 미혼교사와 체육교사들이 도매값에 매도당하는 곤욕을 치렀다.
사건 수사본부와 윤상군집을 1년이상 출입했던 J기자는 연탄집게가 어디 걸려있는지 알정도로 윤상이네 집을 소상히 아는 한식구처럼 되어버렸고 윤상군 영전에 분향을 할때는 누구보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했다.
○…따스한 봄기운이 도는 3월 대검특별수사부가 사학(사학)부정에 메스를 듦으르써 사학재단에는 때아닌 찬서리가 내렸다.
선인학원·경희대·한양대·명지대등을 대상으로 시작한 수사는 18일 백인엽씨를 구속하고 조영욱경희학원장 부처를 연행하는등「태산오동」의 기세였으나 끝마무리에서는 백씨만의 구속으로 끝나는 「서일필격」으로 스타일만 구기는 셈이 되었다.
또 백씨 구속후 20일만에 경찰에서 백씨가 빼돌린 1백5억원의 채권·증권·예금증서등을 압수했으나 검찰은 사유재산으로 돌려준다고 발표했다가 물의가 일자 재수사하는 소동을 빚어 검찰의 체신이 곱배기로 구겨지기도했다.
○…법윈·검찰에 4월은 역시「잔인한 달」이었다.
법관재임명의 형식을 빌은 「4·20법관인사」는 법원장급 7명, 고법부장판사급 10명, 지법부장판사급 14명등「헤비급법관」이 대거 물러나 이보다 나흘앞서 물러난 대법원판사 7명을 포함해 건국이후 최대의 「혁명적」「파격적」인사가 됐다.
품위손상 법관만이 아닌 특임출신등 고령법관이 모두 법복을 벗었고 대법원판사는 다「건국후법관」으로 세대교체했다.
한편 2년1개월의 짧은기간 재임했던 이영섭전대법원장은 원고지 3장에 자필로 쓴 퇴임사에서 재임기간을 『회한과 오욕의 과거』였다고 평해 법원관계자들을 우울케했다.
○…잇달아 있은 검찰인사도 검사장급 5명, 부장검사급 16명등 모두 26명의 검사가 퇴진하고 13개 고등·지방검사장 전원이 바뀌면서 검찰요직 17개를 고시8회출신이 모두 차지, 「고시8회산맥」을 형성했다.
인사에 앞서 10년이상 경력검사는 전원 사표를 받아 79년 김치열장관 이후 두번째의 「무더기사표제출」기록을 남겼다.

<식인상어 소동도>
○‥5월하순은 한국판 「조스」와 곰이 나타나 바다와 산이 공포에 떨었던 때.
5월27일 경기도광주군에서 나타난 반달곰은 끝내 경찰의 포위망에 걸려 사살당해 동심을 아프게했고 반달곰을 놓고 야생곰논란도 있었으나 가려내지 못한채 이 반달곰은 경매에 붙여져 1천6백만원에 약재용으로 팔리고 말았다.
곰보다 이틀앞서 충남보령앞바다에는 상어가 나타나 해녀 박경순씨(29)를 물어 숨지게하는 바람에 해녀들이 공포에 질려 철수해야했다.
해경은 그후 한달 가까이 식인상어를 잡기위해 노력했으나 허사였고 식인상어 출현으로 피서객이 줄어 서해안의 피서경기는 최악을 기록.
○‥헌충일을 하루앞둔 6월5일 하오 서울남부지원에서 공판을 받고 나오던 이상동등 소매치기일행 4명이 법원담을 넘어 탈주.
아내를 포함한 5인의 도망자들은 수사망이 압축되자 잠적4일만에 모두 검찰에 자수, 4일천하의 막을 내렸다.
○…8월3일 기관원을 사칭한 전직 운전사가 한국은행 부산지점장으로부터 현금 2억5천8백만을 받아 달아났던 사건은 50년대의 「가짜 귀하신몸」의 망령이 되살아난 케이스.
범인 변일형(48·전과15범)은 미리 지점장에게 『한은총재인데 고위인사의 공문을 갖고가는 사람의 지시에 따르라』는 전화를 건뒤 가짜 비밀문서를 보이고 한화·일화·미화등 현금만 챙겨달아나다 김해공항 앞길에서 지점장운전사의 신고로 검거된것.

<현대판 귀하신 몸>
고위층이라면 맥을 못추는 나리들의 추태를 드러냈고 정부당국자는 권력기관을 내세운 사기에 조심하라는 웃지못할 당부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8월4일 신고된 서울원만노갑부 윤경화노파등 3명 피살사건은 보름만에 윤노파의 조카며느리 고숙종여인(46)을 범인으로 단정, 재만이 진행중에 있지만 고여인의 장기연행수사등 용의자인권유린이 크게 문제됐던 사건.
더구나 이사건은 경찰의 망신살로 윤노파사건 해결의 주역이던 전용산경찰서 하영웅형사(40)가압수품을 정리하다 윤노파의 예금증서3장을 빼낸것이 밝혀져 또한번 국민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했다.

<외동딸의 방탕기>
이들 계기로 수사경찰이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지만 수사비 부족이란 읍소작전이 주효, 예산확보에 성공하는 바람에 하형사사건은 경찰에는 전화위복으로 작용하고 끝을 맺었다.
하형사는 이름그대로 경찰의「영웅」이 된셈.
○…9월21일 발생한 여대생 박상은양(21) 피살사건은 박양이 미모의 부유층 외동딸이고 방학중해외연수를 다녀왔으며 자유분방한 사생활이 속속 드러남에 따라 날이 갈수록 관심거리가 됐다.
또 용의자로 지목된J군(21·K대3년)을 둘러싸고 경찰의 불법장기연행이 말썽이 되어 고질적인 「피의자 인권」문제가 새삼 제기됐고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다』는 유행어를 탄생시켰다.
또 숨진 박양의 왼쪽 귀밑에서 발견된 치흔의 감정결과가 과연 유죄입증을 위한 증거능력이 있느냐를 놓고 법조계에선 입씨름도 있었다.
경찰은 용의자 J군을 무려 16일간이나 영장없이 연행수사, 구속품신했으나 검찰이 귀가조치하는 바람에 경찰은 스타일을 구겼고 한동안 검찰과 경찰간에는 난기류가 흐르기도했다.
결국 이 사건은 살인피의자를 불구속 송치하는 이변을 낳았고 무분별한 여대생들의 남자교제·대학생해외연수의 부작용등 젊은이들의 오늘의 풍속도를 다시한번 생각케하는 사건이었다.


○…대구 박희범교수부부 동반자살사건은 국민들 사이에 「안락사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박교수는 문교부차관·충남대총장을 지냈고 부인 채주희여사는 내과의사로 인텐리 박사부부여서 이들의 동반자살은 사회에 큰충격이었다.
이 사건의 자극인지 이틀후에는 고급공무원인 남편이 숨지자 20대의 부인이 호텔에서 투신자살하는등 죽음의 부창부맥사건이 잇달아 「애틋한 부부애」와 비뚤어진「열부론」이 화제가 됐다.
○…10월하순 발생한 탤런트 X양폭행사건은 연예인들의 허상을 여지없이 드러냈지만 사건자체가 친고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X양이 끝내 입을 다물어 진상은 「오리무중」인채 풍성한 뒷얘기만 남졌다. 또 이를 흉내낸 납치추행사건이 지방에서도 잇달아 X양사건은 여성수난의 신호탄이 되기도.
○…11월하순의 2백만달러증발사건은 액수나 범행수법에서 놀랄만한 올해의 마지막 큰 사건으로 남게됐다.
한달만에 잡힌 범인은 호송원일당으로 시작에 비해 우습게 끝났지만 FBI의 수사력을 피부로 느낄수 있었고 현상금의 효과등 우리나라의 수사방법에 비해「미국인다운 범죄와 해결」을 한눈에 보여 주었다. 김창태 <부국장대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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