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바람이 돼서 부르는 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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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걱정 말아요 그대’. 지금은 해체된 들국화가 최근까지 공연 맨 마지막에 부르던 곡이다. 관객들도 따라 불렀다. 2004년 곡이라 전성기 같은 폭발력은 없지만 뭔가 뭉클했다.

 “그대여 아무 걱정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 합시다…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격랑의 시기를 함께 떠나 보내며 삶의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관조의 정서다. 힘을 뺀 전인권의 목소리가 지친 이들의 어깨를 토닥였다.

 최근 오디션 프로 ‘슈퍼스타K’(Mnet)의 20대 참가자 곽진언·김필씨가 이 노래를 불러 화제다. 음원 차트를 휩쓸며 경연 초반을 압도했다. 특히 24세의 대학생이자 무명의 싱어송라이터인 곽진언씨는 세상을 오래 산 듯한, 20대 같지 않은 감성과 중저음의 구슬픈 음색으로 눈길을 끌었다. 첫 경연의 자작곡 ‘후회’부터 그랬다. “아무리 원한다 해도 안 되는 게 몇 가지 있지/ 죽도록 기도해 봐도 들어지지 않는 게 있지 …그중에 하나…사랑하는 우리 엄마 다시 살아나는 것.”

 심사위원 윤종신은 그의 맹렬한 지지자다. “사람들이 노랫말을 귀 기울여 듣고 감동받는다. 싱어송라이터의 힘”이라고 했다. 화려한 퍼포먼스에 가려 잊혀졌던 노랫말의 감동, 진정성의 힘을 일깨웠단 얘기다. 실제 이들의 동영상에는 “진심으로 위로받았다”는 댓글이 이어 달렸다.

 문학과지성사는 최근 ‘시인들이 뽑은 아름다운 노랫말 7’을 발표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로 시작하는 김광진의 ‘편지’,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이라는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 등이 뽑혔다. “나는 이미 찾는 이 없고/ 겨울 오면 태공들도 떠나/ 해의 고향은 서쪽 바다/ 너는 나의 하류를 지나네”라는 루시드 폴의 ‘나의 하류를 지나’는 이미 한 편의 시다. 공동 1위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와 요조의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였다.

 이소라가 작사한 ‘바람이 분다’는 같은 사랑을 했지만 서로 다른 기억으로 막 내리고 마는 상실감이 잘 담겼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이민하 시인은 “서늘한 무채색의 읊조림이 보편적인 공감을 절묘하게 빚어냈다”고 평했다. 그 노랫말에 처연한 멜로디, 깊고 서늘한 보컬이 얹어졌다. 이소라의 목소리가 바람이 돼서 불었다. 노랫말이 최고의 시어(詩語)가 되는 순간, 명곡의 탄생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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