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품값인상 부채질|잇단 공공요금 이상이 몰고올 파급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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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석유·전기요금인상에 이어 철도·우편·전화·수도요금의 잇따른 인상을 보는 국민들은 정부가 줄기차게 호소하고 있는 「고통의 분담」이 과연 누구와 함께 분담하자는 뜻인지 분간키 어렵게 되었다.
민간기업과 가계가 불황과 경영악화, 소득감소와 생활수준의 저하를 감내하고 있는 사이에 정부와 정부기업은「소신」있게 「고통」을 털어낼수있는 과단성을 솔선해서 보여주었다. 이런 과단성은 조만간 정부에 버금가는「시장력」을 가진 대기업들에 감명을 주어 그들을 고무시킬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곧 잇따른 공산품, 특히 독과점품목의 가격 「현실화」로 이어질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연말에 겹친 공공요금의 인상을 이례적인 물가안정으로 납득시키려 하고 있다. 이렇게 다올리고도 연말물가는 당초 목표선을 넘지않는다는 점을 여러차례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물가가 거의 대부분 농수산물가의 하락에 힘입었던 점을 지나칠수 없다. 농가의 고통분담에 대한 보답이 고작 정부기업의 가격인상이라면 어떻게 분담하자는 호소가 설득력을 가질것인지 한번쯤 생각했어야할 일이다.
더우기 내년은 물가안정을 이유로 임금조차 자제케 해줄것을 요청하고 있는 정부가 솔선해서 그리고 서둘러 누적된 고통을 덜어보려는 자세는 명백히 공공성에 위배된다. 새삼 연초의 공공요금억제약속을 들추어내지 않아도 정부의 태도는 일관성을 잃고 있다.
유례없는 불황과 쌀값하락이 가져다준 물가안정을 겨우 정부기업의 주름살을 펴는데 이용한다는 인상을 씻기 어렵다.
여유가 생겼을때 얼마간 짐을 덜어놓고 내년물가부담을 홀가분하게 가져가보자는 논리는 일견 그럴듯하나 따지고보면 물가를 언제나 지수억제정책이라는 면에서만 보아온 당국의.타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가는 다만 기술적으로 지수에서나 호도될수 있었을뿐 언제 올려도 결코 은폐되지 않는 속성이있다. 내년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연내인상을 서두른다는 생각자체가 이처럼 지수물가정책의 전형적 산물이다.
설령 누적된 원가요인이있었다해도 공공기업만이 이처럼 무더기로 요금을 올린다면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은 어떻게 될것이고 공공서비스의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는 국민의 부담은 어떻게 되는지도 함께 고려해 볼일이다.
수익자부담을 내걸고 있으나 국민들은 언제나 정부서비스의 공공성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철도의 경우 유가인상에 따른 적자요인은 겨우 9억여원인데 비해 경영부실등에 의한 금년 누적적자는 1천6백50억원이다. 이 빚의 상당부분을 철도이용자에게 떠넘기고 있다.
공기업의 효율은 언제나 요금인상때마다 거론되어왔지만 한번도 원가감소요인이 될만큼 성공해 본적이 없다.
정부가 지금까지 제대로 성공해 본적이 없는「안정정책」에 상당한 열의를 보여왔지만 이처럼 정부의 신뢰성과 밀접히 관련된 공공요금에서 호소력이 감퇴된다면 내년물가를 어떻게 장담할것인지 의심스럽다.
독과점형 공산품의 잇따른 가격인상러시가 그것을 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값을 내려야할 시점인데도 오히려 가격인상을 요청하고 있는 민간업계에 대해 정부의 물가정책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지수상으로 과연 얼마나 안정될지 몰라도 결국 내년물가는 임금억제의 협공까지 받게될 근로자가계와 쌀값하락으로 실질소득이 줄어든 농가가계의 고통분담으로 끝날 공산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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